“빚내서 합의” vs “2심에서 승부”… 실형 기로에 선 피고인, 변호사들 엇갈린 조언
“빚내서 합의” vs “2심에서 승부”… 실형 기로에 선 피고인, 변호사들 엇갈린 조언
법조계 압도적 다수 “1심 총력전이 정답”… ‘계산된 합의’는 왜 최악의 자충수가 되나

형사 재판 피고인인 A씨가 실형을 면하기 위해 피해자와의 합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훔쳐서 라도 합의해라” vs “항소심 카드를 남겨둬라”, 실형의 갈림길에 선 피고인은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할까.
싸늘한 가죽 소파 위로 A씨의 떨리는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그래서, 빚이라도 내서 합의하라는 겁니까, 아니면 일단 버텨보라는 겁니까?”
변호사 사무실 8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머릿속은 뒤엉킨 실타래처럼 더 복잡해졌다. 한쪽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 1심에 모든 걸 걸라’고, 다른 한쪽은 ‘항소심을 위해 실탄을 남겨두라’고 속삭였다. 구치소의 차가운 철창과 집으로 향하는 따뜻한 불빛 사이, 그의 운명을 가를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벼랑 끝 배수진”… 1심에 모든 걸 던져라
변호사들이 제시한 첫 번째 카드는 ‘1심 총력전’,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선 배수진이다. 재판부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던지는 전략이다. 대출이든, 지인에게 빌리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합의금을 마련해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한다.
만약 피해자가 완강히 합의를 거부한다면, 그 돈을 법원에 맡기는 공탁(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해 돈을 법원에 맡기는 제도)으로라도 진심을 증명해야 한다. 이는 “판사님, 저는 돈이 없어 이만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 모든 것을 걸고 사죄하고 있습니다”라는 무언의 외침이다.
법무법인 건영 김수민 변호사는 “1심에서 어정쩡하게 대응하다 실형이 나오면 그 자리에서 법정구속된다”며 “항소심에서 풀려난다 해도 최소 수개월은 구치소에서 보내야 하고, 그 시간은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는다”고 1심 대응의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피해자 애 태우기?”… 위험천만한 항소심 노림수
반면 일부 변호사는 위험하지만 솔깃한 두 번째 전략을 내밀었다. ‘항소심을 염두에 둔 단계적 접근’이다. 피해자의 분노가 하늘을 찔러 합의 의사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1심에 모든 걸 쏟아붓는 건 ‘헛 힘’만 쓰는 꼴이라는 계산이 깔려있다.
어차피 피고인이 실형을 받으면 피해자는 공탁금은 공탁금대로 받고 가해자는 감옥에 갔으니 아쉬울 게 없다는 논리다. 그래서 피해액의 일부만 1심에서 공탁해, 피해자가 ‘나머지 돈을 받으려면 2심에서 합의해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자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변호사 서아람 법률사무소의 서아람 변호사는 “실제 변호인들이 실무에서 고민하는 방식”이라면서도 “판사가 보기에는 ‘피해 회복 의지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줘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고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자칫 ‘꼼수’로 비춰져 재판부의 신뢰를 완전히 잃는 최악의 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항소심 전략은 없다”… 법정은 진심을 겨루는 무대
결국 변호사들의 조언을 관통하는 진실은 하나다. ‘항소심 전략’이란 이름의 B 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법무법인 에스엘 이성준 변호사는 “법원은 기계적으로 공탁금액만 보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이 얼마나 진심으로 반성하는 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며 “계산적인 접근보다는 진심을 다해 사죄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최근 변경된 형사공탁 제도는 ‘항소심 노림수’의 위험성을 극대화했다. 이 변호사는 “이제 법원이 공탁 사실을 피해자에게 알리고 그 의견까지 듣게 된다”며 “일부만 공탁하는 행위는 오히려 피고인에게 불리한 ‘피해자의 의견’을 법원에 제출하게 만드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심과 2심을 나누는 계산적인 접근은, 결국 진정성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스스로 버리는 행위일 뿐이다. 형사 법정이라는 차가운 무대 위에서,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은 진심 어린 반성의 무게를 결코 이길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