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면 멈춰'는 동의였나…유사강간 혐의에 엇갈린 진술
'싫다면 멈춰'는 동의였나…유사강간 혐의에 엇갈린 진술
"괜찮다"던 그녀의 돌변, 벌금형 없는 중범죄 혐의의 진실은?

SNS로 만난 여성에게 '싫다고 하면 멈추면 된다'는 말을 '그린라이트'로 오해해 마사지 중 신체 접촉을 한 남성이 유사강간 혐의로 피소됐다. / AI 생성 이미지
"싫다고 하면 멈추면 된다." 이 한마디를 '그린라이트'로 믿었던 남성이 유사강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취미로 시작한 오일 마사지가 벌금형조차 없는 중범죄 혐의로 돌아온 것이다.
SNS를 통한 만남에서 '동의의 범위'를 둘러싼 해석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첫 경찰 조사가 그의 운명을 가를 중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괜찮다"에서 "불쾌했다"로, 파국으로 치달은 마사지
사건의 발단은 지난 4월, 익명 어플인 트위터였다. 오일 마사지가 취미인 A씨는 간지럼을 태우는 행위(간플)를 즐기는 여성 B씨에게 연락했다.
A씨는 첫 대화에서 '성기 쪽을 건드리는 성감 마사지와 간플을 함께 진행한다'고 설명했지만, 이 메시지는 현재 삭제된 상태다. 한 차례 만남이 무산된 뒤 5월 9일, B씨가 먼저 연락해 오면서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됐다.
A씨는 약속 장소로 향하던 중 B씨로부터 “협의 안 된 부분은 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주의할 점을 묻자 B씨는 “싫다고 하면 멈추면 된다”고 답했다. A씨는 이 말을 '거부 의사 표시 전까지는 행위가 용인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후 간플과 마사지를 진행하던 A씨는 성기 부근 마사지 중 손가락을 살짝 삽입했다. B씨가 “이건 싫다”고 말하자, A씨는 즉시 행위를 중단하고 사과했다. 마사지가 끝난 후 불편한 점이 있었는지 묻자 B씨는 “오일로 처음 받아봐서 당황스러웠다. 그거 말곤 괜찮았다”고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간 뒤, A씨의 안부 인사에 B씨는 “그때(손가락 삽입) 불쾌했다”고 입장을 바꿨고, 얼마 후 A씨는 경찰로부터 고소장이 접수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단순 추행 아닌 '유사강간'…벌금형 없는 벼랑 끝
법률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이 단순 강제추행을 넘어 훨씬 무거운 '유사강간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손가락을 신체 내부에 삽입하는 행위는 법원에서 매우 엄중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모두로 법률사무소 한대섭 변호사는 "유사강간은 폭행이나 협박으로 사람의 구강, 항문 등 성기를 제외한 신체의 내부에 성기능을 하는 신체 일부나 도구를 넣는 행위를 처벌하며, 벌금형 없이 2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처벌되는 범죄입니다"라고 설명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법률사무소 유(唯) 박성현 변호사 역시 의뢰인에게 유리해 보이는 정황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상담하신 내용을 살펴보면, 사전에 '성감 마사지'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상대방이 '싫다고 하면 멈춰달라'고 말한 점을 토대로 본인은 명시적인 거절 전까지는 동의가 있었다고 판단했을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었는지, 그리고 당시 상황에서 '성적 자유'를 침해했는지를 엄격하게 따집니다"라고 지적했다.
만남 직전 “협의 안 된 부분은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삽입 행위를 한 점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동의 오인” vs “명백한 자백”…진술이 운명 가른다
A씨가 기댈 수 있는 부분은 '고의성'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법률사무소 필승의 김준환 대표변호사는 “상대방이 대화 중 '싫다 하면 멈춰달라'고 한 점은, 의뢰인 입장에서 '거부 의사 표시 전까지는 행위가 용인된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근거가 됩니다. 실제 거부 의사가 나오자마자 즉시 중단하고 사과한 점은 성범죄의 고의가 없었음을 입증할 핵심 요소입니다”라고 분석했다. 상대가 먼저 연락해 만남이 성사된 점 등도 A씨에게 유리한 정황이다.
하지만 A씨의 대응이 오히려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법무법인 베테랑 윤영석 변호사는 A씨가 사후에 보인 반응이 자백으로 읽혀질 위험을 지적했다.
그는 "사건 이후 메세지에서 상대방이 명확히 '불쾌했다'고 피해 사실을 주장하고 있으며, 귀하께서 '싫다 하면 멈추면 된다는 말에 한 거고 바로 멈췄다'고 답한 부분은 자칫 '명확한 사전 동의 없이 일단 행위를 시도했다'는 자백으로 읽힐 위험이 있습니다"라고 경고했다.
법무법인 유한 엘케이비평산 정진열 변호사 역시 법원이 '싫다 하면 멈춰라'는 말을 사전 동의로 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는 “법원은 이를 '사전 동의'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동의하지 않은 행위를 일단 저지르고 보라'는 뜻이 아니라, '진행 중 불쾌함이 느껴지면 즉시 중단해야 한다'는 주의 사항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큽니다”라고 덧붙였다.
삭제된 메시지, '스모킹 건' 될까…초기 대응이 전부
결국 사건의 향방은 A씨의 초기 진술과 증거에 달리게 됐다. 다수의 변호사들은 처음 '성감 마사지'를 언급했던 삭제된 메시지의 복구 여부가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이 메시지가 A씨가 동의 범위를 오인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률사무소 신임 박교현 변호사는 초기 진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최근 대법원 판결 등으로 인해 피의자 진술의 일관성과 구체성도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하게 되었고, 따라서 최초 경찰 조사에서의 진술을 신빙성 있는 마치는 것이 송치 여부를 가르는 핵심적인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아 있는 대화 내역을 즉시 보존하고, 감정적으로 상대에게 연락하는 행위는 '2차 가해'나 '증거인멸 시도'로 비칠 수 있어 절대 삼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억울함을 호소하기에 앞서, 경찰 조사 전 반드시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진술 방향을 세밀하게 설계하고 조사에 동석하는 것이 억울한 처벌을 피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한목소리로 조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