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려고 자기가 판 건데"… 성착취물 구매자의 항변, 법원은 '제작의 공범'이라 답했다
"돈 벌려고 자기가 판 건데"… 성착취물 구매자의 항변, 법원은 '제작의 공범'이라 답했다
미성년자 '자발적' 판매 주장에도 법원 '엄벌'… '피해자 합의'가 유일한 감형 열쇠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구매 시,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판매했다는 생각은 위험한 착각이다. /셔터스톡
성착취물 구매 혐의로 재판을 앞둔 A씨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그가 구매한 영상물은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돈이 필요하다"며 직접 홍보하고 판매한 것이었다.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판 건데, 거액의 합의금을 주는 게 의미가 있습니까?"
A씨의 이 질문에 법조계는 '매우 위험한 착각'이라고 경고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사건에서 '합의'는 단순한 감형 조건이 아닌, 실형을 피할 거의 유일한 열쇠이기 때문이다.
"백 개 양형자료보다 합의서 한 장"… 전문가들의 한목소리
법률 전문가들은 A씨의 생각이 법정에서 통하지 않을 '위험한 착각'이라고 입을 모았다. 검사 출신 서아람 변호사는 "이런 사건에서 합의의 중요성은 다른 양형자료를 백 개 모아도 합의서 한 장에 미치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합의가 선처를 위한 절대적인 요소라는 의미다.
김경태 변호사 역시 "미성년자가 자발적으로 영상물을 제작·판매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법적으로 유효한 의사표시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성착취 구조에 편입된 피해자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즉, 미성년자의 ‘동의’나 ‘자발성’은 범죄 성립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법원 "존재 자체가 유해한 금제물"… 구매는 착취의 사슬
법원의 판단도 일관된다. 법원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유해한 ‘금제물(禁制物)’로 본다.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은 2023년 한 판결에서 “성착취물에 등장하는 아동·청소년의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그 제작행위부터 엄단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구매 행위는 결국 제작을 유인하는 수요를 제공해 성착취의 사슬을 유지시키는 공범 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서울고등법원 역시 “성 인식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다른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판결하며 사회적 해악을 강조했다.
'합의'는 돈이 아닌 '진정한 반성'의 증표
그렇다면 합의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변호사들은 합의가 단순히 돈을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윤관열 변호사는 “합의는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처벌 의사를 철회하거나 선처를 호소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경태 변호사도 “단순한 금전적 피해 회복을 넘어, 피해자의 정신적 회복과 건강한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이 과정을 통해 피고인의 진정한 반성 의지를 판단한다. 만약 합의가 어렵더라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김혜주 변호사는 “합의를 위한 노력을 했으나 이르지 못한 사유를 충실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으며, 이동현 변호사는 “공탁(합의가 어려울 때 법원에 돈을 맡기는 제도) 등을 이용하는 한편, 반성문을 바탕으로 선처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벌금형 없는 징역형'… 실형 피하려면 '착각'부터 버려야
결론적으로 A씨의 질문은 법의 근본적인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은 미성년자의 경제 활동을 보장하는 법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이들을 성적 착취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 목적으로 한다.
김지진 변호사가 "실형을 피하는 것이 목표"라고 언급했듯, 성착취물 구매 범죄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제11조 제5항에 따라 벌금형 없이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는 중범죄다. 선처를 받기 위한 첫걸음은 ‘피해는 없다’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진심으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장 확실한 증표가 바로 ‘피해자와의 합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