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불참하면 항소 포기 간주"... 전세사기 피해자 두 번 울리는 '조정의 덫'
"조정 불참하면 항소 포기 간주"... 전세사기 피해자 두 번 울리는 '조정의 덫'
전문가들 "조정은 강제집행 고통 덜고 신속한 구제 가능... 일단 출석해 조건 확인해야"

전세사기 소송을 벌여온 A씨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자, 법원이 '조정회부결정' 통지서를 보내왔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법원 조정 불참 고민하는 전세사기 피해자... 변호사들 "항소 취하될 수도, 출석해야"
전세사기로 보증금을 잃고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힘겨운 소송을 벌여온 A씨. 1심에서 인정된 배상 책임은 고작 30%였다.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항소를 결심한 그에게 법원이 보낸 것은 판결문이 아닌 '조정회부결정'이었다.
"조정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치열한 법정 다툼 대신 대화와 합의를 권하는 법원의 제안에 A씨는 망연자실했다. 억울함을 판결로 증명받고 싶었던 그에게 '조정'은 싸움을 포기하라는 항복 선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법원의 제안을 무시하고 조정에 불참해도 괜찮을까요?
"재판부에 미움 살라"... 조정 불참, 그 치명적 불이익
A씨의 가장 큰 고민은 조정기일 참석 여부지만, 법조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가장 치명적인 위험은 '항소 취하' 가능성이다. 현행 민사조정법(제31조)은 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조정기일에 두 차례 연속 불출석할 경우, 항소를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A씨가 조정에 나가지 않는다면 30% 배상 판결을 내린 1심 결과가 그대로 확정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법률상 명시적인 불이익은 아니더라도, 재판부의 '심증'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법무법인 인화의 김명수 변호사는 "조정절차를 완강하게 거부하면 재판부에 미움을 사 1심보다 더 나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법무법인 한원의 조훈목 변호사 역시 "법률상 명시적인 불이익은 없지만, 재판부가 직권으로 회부한 조정에 합리적 이유 없이 불참하는 것은 재판부에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도 결국 사람이 하는 절차이기에, 법원의 제안을 무시하는 태도가 판결에 미묘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강제집행 고통 덜어준다"... 판결보다 '조정'이 나은 현실적 이유
법원이 판결 대신 조정을 권하는 데는 피해자에게 더 유리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전문가들은 조정을 통해 피해자가 더 신속하고 확실하게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조훈목 변호사는 "조정으로 사건이 종결되면 판결보다 훨씬 빨리 분쟁이 끝날 수 있다"며 "경험상 피고가 배상금을 임의 지급할 가능성도 높다"고 덧붙였다. 이는 '강제집행'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의미다.
어렵게 승소 판결을 받아도 상대방이 돈을 주지 않으면, 피해자는 직접 상대의 재산을 찾아내 압류하는 복잡한 강제집행(법원 명령으로 재산을 확보하는 절차)을 거쳐야 한다. 조정은 이 과정을 생략하고 자발적인 변제를 유도하는 효과가 크다.
물론 조정안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거부할 권리도 보장된다. 법무법인 심의 심준섭 변호사는 "조정안이 불만족스러우면 거부하고 소송 절차로 진행하면 된다"며 "일단 출석해 어떤 조건이 제시되는지 확인하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조정은 '받아들일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카드'이지, 강제 조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개사 책임 70%" 판례도... 뒤집기 노리는 항소심, 조정은 '기회'
최근 법원은 전세사기 사건에서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더 무겁게 묻는 추세다. 실제 인천지방법원 등 하급심에서는 공인중개사가 임대인의 세금 체납 여부나 주택의 권리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책임을 폭넓게 인정해 배상 비율을 70%까지 높이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판례들은 항소심 재판은 물론 조정 과정에서도 A씨에게 유리한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 1심의 30% 배상 비율이 부당하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할 근거가 생긴 셈이다.
결국 A씨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판결을 통해 '정의'를 확인받고 싶은 마음과, 조정을 통해 '현실적인 보상'을 신속히 확보해야 하는 현실 사이의 갈림길이다.
법조계의 조언은 명확하다. 일단 조정 테이블에 앉아 자신의 억울함과 최근 판례 동향을 근거로 배상 비율 상향을 강력히 요구하라는 것이다. 법정에서의 진짜 싸움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