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뒤에 숨은 전세사기범, 대표이사 처벌 가능할까
법인 뒤에 숨은 전세사기범, 대표이사 처벌 가능할까
'무자본 갭투자' 악성 임대인, 변호사들 "사기 입증 가능성 높다"

무자본 갭투자로 전세 사기를 벌인 법인 임대인의 경우, 대표 개인에게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다. / AI 생성 이미지
전세 계약 만료 후 잠적한 법인 임대인. 등기부를 떼어보니 전세가와 매매가가 동일한 '무자본 갭투자'였고, 과거에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전력이 있었다.
형사 고소를 진행한 피해자는 법인 대표 개인을 처벌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법률 전문가들은 "대표이사 개인에게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새로 발견한 증거는 즉시 수사기관에 제출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조언했다.
전세가=매매가, 반복된 체납…사기죄 입증 열쇠
전세 계약 만료와 함께 보증금을 들고 사라진 법인 임대인. 피해자가 직접 확인한 등기부등본에는 사기의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전세가와 매매가가 같은 '무자본 갭투자' 방식의 계약이었고, 해당 법인은 과거에도 보증금을 미반환해 건물이 강제 매각된 이력이 있었다.
잦은 세금 체납 기록까지 더해져 애초에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나 의사가 없었다는 의심이 짙어지는 상황. 법률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황이 사기죄의 '고의성'을 입증할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법무법인 선의 이지원 변호사는 "전세가와 매매가가 동일하고, 기존에도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해 강제매각까지 당한 전력이 있다면, 이를 근거로 들어 임대인이 임대차 계약 당시부터 전세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라고 분석했다. 즉, 계약 체결 시점부터 계획된 범죄였음을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인이 한 일"이라는 변명, 대표이사에겐 안 통한다
피해자 입장에선 계약 상대방이 개인이 아닌 '법인'이라는 점이 큰 불안 요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법인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는 통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실질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사기 행각을 벌인 주체가 대표이사 개인이라면 그에게 직접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대한중앙 조기현 변호사는 "법인이 임대인이지만 사실상 기망행위를 한 것은 대표이사라면 대표이사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라고 명확히 했다.
이지원 변호사 역시 "사기죄로 형사 고소하는 경우, 대표이사 등 실제 의사결정 권한을 행사한 개인을 상대로 할 수 있습니다"라며 "대법원 역시 대표이사 등 실제 의사결정 권한을 행사한 개인 또한 사기죄의 책임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뒤늦게 찾은 결정적 증거, "알아서 하겠지"는 금물
피해자는 고소인 조사를 마친 뒤에야 임대 법인의 과거 전력 등 사기죄 입증에 유리한 추가 정황들을 발견했다. 이를 수사기관에 알려야 할지 망설였지만, 변호사들은 '반드시, 그리고 즉시 알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사기관이 알아서 조사해 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다.
변호사 서아람 법률사무소의 서아람 변호사는 "조사에서 미처 말하지 못했다는 부분들이 매우 중요한 부분들이니 꼭 추가 진술서를 내시고, 가능하다면 변호사 도움을 받아 고소대리인의견서로 제출하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지원 변호사 또한 "지금이라도 해당 상황을 알리면, 담당수사관이 상대방에 대한 사기죄 성립 가능성을 검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라며 적극적인 증거 제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보증금 회수, 가장 빠른 길은 '형사 합의'
사기꾼을 처벌하는 것과 별개로 피해자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보증금을 돌려받는 일이다. 형사 고소로 임대인이 유죄 판결을 받아도 보증금이 저절로 반환되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빠른 피해 회복 방법은 형사 절차 과정에서 '합의'를 시도하는 것이다.
조기현 변호사는 "기소전이라도 수사단계에서 형사고소 후 합의 과정을 통해 실질 배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이 가장 빠른 해결책입니다"라고 조언했다. 가해자가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해 합의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만약 합의가 결렬되면 민사소송을 통해 보증금 반환 판결을 받아 강제집행에 나서야 한다. 다만 이지원 변호사는 "민사소송의 경우 상대방에게 집행할 재산이 없다면 승소해도 실익이 없기 때문에, 미리 상대방의 집행 가능한 재산을 확보해두어야 합니다"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이 외에 형사재판에서 법원에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배상명령 제도'도 고려해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