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 안 되면 강제추행? '마지못한 성관계'의 법적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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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안 되면 강제추행? '마지못한 성관계'의 법적 딜레마

2025. 12. 08 11:15 작성
최회봉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caleb.c@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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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성교는 추행 아냐"… 강간죄 입증 실패 시 '플랜 B'는 없다, 법률 전문가들이 말하는 진짜 전략

대법원 판례상 강제적 성관계는 강간죄의 영역일 뿐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수 없다./셔터스톡

힘에 밀려 당했는데…'강간'도 '강제추행'도 아니라고요?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지만, 그는 힘으로 나를 짓눌렀어요."

성폭력 피해자 A씨는 변호사 앞에서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만약 강간죄가 인정되지 않으면, 강제추행으로라도 처벌할 수 있느냐'는 것.


법률 시장에선 의견이 엇갈리지만, 법원의 답은 놀랍도록 명확하다. 성관계는, 강제추행이 될 수 없다.


'성교는 추행이 아니다'…흔들리지 않는 대법원의 대원칙


논쟁의 출발점은 '성교' 행위를 법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에 있다. 우리 법원과 판례의 입장은 확고하다. 성관계, 즉 '간음'이 있었다면 이는 강간죄의 영역일 뿐, 강제추행죄의 '추행'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김경태 변호사(법무법인 이스트)는 "판례에 따르면, 성교 행위가 있는 경우 이는 '간음'에 해당하며, 이를 '추행'으로 의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성관계 사실 자체를 떼어내 강제추행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실제 한 판례(서울고법 2016노1882)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할 정도의 유형력을 행사한 다음 피해자를 간음하였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여... 이러한 피고인의 ‘간음’행위를 구성요건적 행위 유형이 완전히 다른 ‘추행’행위의 범주에 포함시켜 강제추행죄로 의율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두 범죄의 핵심 행위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명확히 선을 그은 것이다.


"강제추행은 가능"…피해자 혼란시키는 엇갈린 조언들


하지만 현실의 법률 상담 현장에서는 피해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부 변호사들은 '강간이 안 되면 강제추행은 가능하다'는 식의 조언을 하기도 한다.


한 변호사는 "강제추행죄는 강간죄보다 요구되는 폭행·협박의 정도가 낮다"며 "성관계 자체가 이루어졌더라도 강간죄의 요건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수사기관은 강제추행죄로 전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변호 역시 "대법원은 성관계에 이른 사례에서도 피해자의 심리적 압박상태를 고려하여 강제추행죄를 인정한 바 있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법조계 내에서도 다른 의견이 나오는 듯한 모습은, 법적 대응을 준비하는 피해자에게 큰 혼란을 준다. '플랜 B'가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지만, 이는 위험한 착각일 수 있다.


왜 이런 오해가 생길까?…'성관계 전후'와 '성관계 자체'의 혼동


이러한 혼란은 왜 발생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두 가지 지점을 혼동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첫째, 성관계 '전후'에 있었던 별도의 신체 접촉과 성관계 '자체'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령 가해자가 옷을 강제로 벗기거나, 성관계에 이르기 전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는 행위는 그 자체로 강제추행죄가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성교 행위와는 별개의 범죄이며, 성교 행위 자체가 추행으로 인정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둘째, 강간죄의 성립 요건이 완화되는 최근 대법원 판례의 흐름을 잘못 해석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사후적으로 보아 피해자가 사력을 다하여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8도7709 판결)고 판시하며 피해자의 입장을 폭넓게 고려하고 있다.


이는 강간죄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신호이지, '성관계도 추행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앞서 언급된 서울고법 판례(2016노1882) 역시, 최종적으로는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어 강간죄 유죄가 확정된 바 있다.


'플랜 B'의 함정…강간 주장 약화시키는 '예비적 고소'


결론적으로 성관계 자체를 강제추행으로 고소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오히려 이런 시도는 강간죄 주장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고소장에 주위적으로 강간죄, 예비적으로 강제추행죄를 함께 적는 전략이 대표적이다. 이는 '스스로 강간에 이를 정도의 폭행·협박은 아니었다고 인정하는 셈'으로 비쳐, 정작 가장 중요한 강간 혐의 입증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강간 피해를 입었다면 강간죄 성립만을 명확히 주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소장에는 거절 의사를 표시한 과정, 가해자의 강압적 행태, 당시 느꼈던 공포와 무력감 등 '왜 저항할 수 없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핵심이다.


법리 논쟁보다 중요한 것…'왜 저항 못했나' 입증할 증거


복잡한 법리 논쟁 속에서 피해자가 가장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검사 출신 서아람 변호사는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법리가 아니라 증거가 확보되어있는지 여부"라고 강조한다. 법정에서 유무죄를 가르는 것은 결국 증거다.


수사 과정에서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 사건 전후의 대화가 담긴 메시지나 통화 기록, CCTV 등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치 않은 성관계의 피해를 입증하는 길은, '강간이냐 추행이냐'의 법리 논쟁에 매몰되기보다, '왜 저항할 수 없었는가'를 입증할 구체적 사실과 증거를 모으고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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