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가해자가 '3000만원에 합의하자'고…덥석 받았다간 1억2000만원 날릴 수도?
전세사기, 가해자가 '3000만원에 합의하자'고…덥석 받았다간 1억2000만원 날릴 수도?
피해액 1억 5천만원, 피해자 400여명…'형사 합의일 뿐'이라는 말 믿고 서명해도 될까

전세사기 가해자와 형사 합의 시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문구는 위험하다. /AI 생성 이미지
400여 명에게 '깡통전세' 사기를 친 가해자로부터 4년 만에 연락을 받은 A씨. 피해액 1억 5000만 원을 고스란히 날린 A씨에게 가해자 측 변호사는 3000만 원에 형사 합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가해자의 감형을 위한 '형사상 합의'일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한 푼이라도 건지고 싶은 마음과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고 싶은 마음이 뒤섞인 상황.
A씨는 돈을 받더라도 나머지 피해 금액 1억 2000만 원을 돌려받거나 정부의 피해자 지원을 받는 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전세사기 가해자의 형사 합의 제안, 덥석 받아도 괜찮을까?
'민사 포기' 문구 한 줄에…나머지 1억 2000만원 청구권 잃을 수도
변호사들은 합의서 문구에 따라 A씨의 남은 권리가 전부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형사 합의는 원칙적으로 민사상 권리와 별개지만, 합의서 내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상산 채한규 변호사는 "합의서에 '민사상 청구를 포기한다'거나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포함되지 않는 한, 형사합의만으로 민사적 권리에 직접적인 영향이 생기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상대방 변호사가 작성한 합의서에 민사 포기 조항이 슬쩍 포함되는 경우가 실무에서 종종 있다"고 지적했다.
법률사무소 정벽 김인규 변호사 역시 "형사합의를 하면서 '민·형사상 일체의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포함되면, 향후 민사청구나 대위변제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한 문장 때문에 예상치 못한 권리를 잃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가해자 측의 '형사 합의일 뿐'이라는 말을 그대로 믿고 서명했다가는, 3000만원을 받는 대가로 나머지 1억 2000만원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변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합의서에 '이 문구' 반드시 넣어야…'형사 사건 한정, 민사 권리 유보'
변호사들은 안전한 합의를 위해 합의서에 반드시 포함해야 할 문구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핵심은 이번 합의가 오직 형사 사건에만 국한되며, 다른 모든 민사상 권리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법무법인 창세 민신혜 변호사는 "합의서에는 '본 합의금은 형사사건의 양형을 위한 보증금 일부 변제에 한정하며, 잔여 보증금 1억 2000만원과 지연손해금 등에 관한 민사상 청구권·피해자 지원 및 대위변제 권리는 유지한다'고 명확히 기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형사상 일체 이의 없음', '채권 채무가 모두 소멸한다'와 같은 문구는 절대 넣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합의금을 받는 시점도 중요하다. 더든든 법률사무소 조수진 변호사는 "합의서 문구 하나가 선생님의 권리를 통째로 닫아버릴 수 있다"며, 합의금을 모두 받은 뒤 처벌불원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합의금 3000만원, 더 올릴 수 있을까?…대위변제 계획 있다면 '이것'부터 확인해야
가해자가 제시한 3000만 원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게 변호사들의 중론이다. 가해자가 감형을 위해 합의를 절실히 원하는 상황인 만큼, 피해자가 협상에서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태희 민경남 변호사는 "가해자 측의 절박한 감형 욕구를 협상력으로 활용한다면 더 유리한 결과와 높은 금액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다만 합의금을 받는 것이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특별법'에 따른 지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다.
법무법인 정향 장두식 변호사는 "합의금 수령이 임차보증금 회수로 평가되어 (피해자) 결정 취소·철회 및 환수 정산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합의금이 지원금이나 대위변제 지급액 산정에서 조정되거나, 이미 받은 지원금을 일부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합의에 앞서 현재 이용하려는 지원 제도의 담당 기관에 합의금 수령이 미치는 영향을 먼저 확인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