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된 관계라 믿었는데…돌변한 연인의 '고소·자살 협박', 대처법은?
합의된 관계라 믿었는데…돌변한 연인의 '고소·자살 협박', 대처법은?
성관계 후 '원치 않았다'며 협박·스토킹…법률 전문가들 '증거 확보' 최우선, '선제 고소'와 '맞고소 방어' 딜레마 조언

합의하에 사랑을 나눈 다음 날, 연인에게서 날아온 협박 메시지 한 통이 한 남성의 일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어제의 연인, 오늘의 협박범…'합의 성관계' 후 돌변한 상대, 법적 해법은?
"성폭행으로 고소하겠다. 같이 죽자."
합의하에 사랑을 나눈 다음 날, 연인에게서 날아온 메시지 한 통이 한 남성의 일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어제의 연인이 오늘의 협박범으로 돌변한 이 비극적 상황에서, 법은 과연 누구의 편에 서줄까.
"어제의 연인, 오늘의 협박범…'자살하겠다'는 메시지의 무게"
"제발 살려주세요." 한 온라인 법률 상담 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짧은 비명으로 시작했다. 글쓴이는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던 상대방이 교제를 거절하자 돌변했다고 했다.
"성폭행으로 고소하겠다", "네 집 앞에서 죽어버리겠다"는 메시지가 쉴 새 없이 쏟아지며 일상은 산산조각 났다.
질문자는 합의 관계를 입증할 CCTV 영상 등 증거가 있다고 밝혔지만, 계속되는 정신적 고통에 무력감을 호소했다. 소송까지 가야만 이 고통을 끝낼 수 있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묻는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절망이 묻어났다.
"모든 기록이 무기다"…변호사들, 증거 확보 '한목소리'
사연을 접한 변호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증거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상대방의 모든 말이 법정에서 자신을 지킬 무기이자, 상대를 공격할 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베테랑의 황순철 변호사는 "CCTV 뿐만 아니라 관계 후 나눴던 카톡 등 대화 내용을 잘 보관하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LKB평산의 정다미 변호사 역시 "욕설 및 협박 관련 메시지도 저장해서 보관해두시기 바란다"며 모든 기록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변호사들은 개인이 생각하는 증거의 가치와 법률 전문가가 판단하는 증거의 효력이 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다미 변호사는 "의뢰인이 생각하는 것과 수사 과정을 아는 전문가가 바라보는 증거 가치가 다를 수 있다"며 "정말 그 CCTV만으로 강간 주장 방어가 가능할지 어떨지는 변호사와 미리 상의해보시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라는 뜻이다.
"창과 방패의 딜레마…'스토킹 고소'가 '성범죄 맞고소' 부를 수도"
증거를 확보했다면 다음은 행동에 나설 차례다.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길을 제시했지만, 어느 쪽이든 위험 부담이 따르는 '딜레마' 상황임을 분명히 했다.
첫 번째는 상대방의 협박과 스토킹 행위를 문제 삼아 먼저 칼을 빼 드는 '선제공격'이다. 법무법인대한중앙의 조기현 변호사는 "차라리 현 단계에서 상대방을 협박 및 스토킹으로 고소하는 것이 더 낫다"고 단언했다. 상대방이 성범죄로 고소할 때까지 기다리며 방어하는 것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범죄(협박, 스토킹)를 먼저 고소해 주도권을 잡으라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 전략에는 치명적인 위험이 따른다. 형사 고소는 상대방을 자극해 '성폭력 맞고소'라는 최악의 카드를 꺼내 들게 할 수 있다.
법률사무소 필승의 김준환 변호사는 "성범죄는 피해 여성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성이 있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처벌이 이루어진다"며, 만약 맞고소를 당하면 "상대방 여성보다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방어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섣부른 공격이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경고다.
"소송만이 답은 아니다"…'내용증명'과 '가처분'이라는 제3의 길
전면전이 부담스럽다면, 소송 전 단계에서 상대를 압박하는 방법도 있다. 다수의 변호사들은 '내용증명'(개인이 특정 내용을 언제, 누구에게 발송했는지 우체국이 공적으로 증명해주는 제도) 발송을 추천했다.
윈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의 한장헌 변호사는 "변호사를 통한 내용증명 발송이 효과적"이라며 "추가 연락 및 협박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경고를 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상대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면서, 동시에 법적 분쟁 시 자신의 명확한 의사를 입증하는 증거로도 활용된다.
형사 고소와는 별개로, 법원에 직접 보호를 요청하는 강력한 수단도 있다. 법무법인 공명의 김준성 변호사는 '접근금지 가처분'(법원이 형사처벌과 별개로 접근, 연락 등을 막는 민사상 임시 조치) 신청을 적극 권했다.
김 변호사는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은 형사고소와 달리 법원에 신청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반 시 위반 횟수당 과태료가 부과되므로 매우 실효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경찰의 임시조치보다 강력한 법원의 결정으로 상대방의 접근 자체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전문가들의 조언은 하나로 모인다. 모든 증거를 철저히 수집하고,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한 뒤,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섣부른 감정적 대응은 파국을 부를 뿐이다. 어제의 사랑이 오늘의 악몽으로 변해버린 비극 속에서, 법의 문을 두드리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