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차용증'으로 유류분 회피 시도…실제 법적 인정 가능성은
'신탁·차용증'으로 유류분 회피 시도…실제 법적 인정 가능성은
억원대 아파트 신탁하고 예금 2억원은 차용 형식으로
변호사들 “오히려 더 위험”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조부와 5년째 함께 살고 있는 A씨. 왕래가 끊긴 다른 자식들 대신 자신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고 싶다는 조부의 뜻에 따라 A씨는 법적 준비에 나섰다.
조부의 재산은 2억원대 아파트 한 채와 예금 2억원. A씨는 다른 상속인들의 유류분 청구를 피하기 위해 아파트는 신탁 등기를 하고, 예금은 증여와 차용 형식을 혼합해 이전받았다.
스스로는 완벽하다고 생각한 상속 계획이었지만, 변호사들은 예상치 못한 경고를 보냈다. A씨의 계획은 유류분 분쟁을 막을 수 있을까?
아파트는 신탁, 예금은 차용…유류분 피하려던 손자의 계획
A씨는 재작년 8월, 조부 명의의 아파트를 부동산 관리신탁으로 돌렸다. 조부가 사망하면 잔여 재산의 권리가 손자인 자신에게 돌아오도록 설계했다. 신탁 등기 시점으로부터 시간이 충분히 흐르면 상속 재산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2억원의 예금은 더 복잡한 방식을 썼다. 작년 6월 A씨는 조부로부터 2억원을 모두 자신의 계좌로 이체받았다. 이 중 5000만원만 증여로 신고했고, 나머지 1억 5000만원에 대해선 조부는 모르는 차용증을 혼자 작성했다.
A씨는 유류분 소송이 제기되지 않으면 이 차용증으로 증여세를 피하고, 만약 소송이 걸리면 차용증을 없앤 뒤 증여로 인정하고 가산세를 낼 계획이었다. 이처럼 치밀하게 준비한 A씨의 계획은 법적으로 안전할까?
신탁 부동산, '악의의 증여'로 기간 상관없이 유류분 대상 될 수도
변호사들은 A씨의 계획이 유류분 분쟁을 피하기 어렵다고 봤다. 특히 부동산 신탁의 기준 시점에 대한 A씨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A씨가 활용한 신탁은 조부 사망 시 손자에게 재산이 귀속되는 구조로, 사실상 유언과 같은 효과를 내 '유언대용신탁'에 해당한다.
법무법인 신세기 양승환 변호사는 “최근 하급심은 이를 사인증여(증여자가 사망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하는 증여)에 준하여 신탁 시점이 아니라 상속개시(사망) 시점을 기준으로 유류분 기초재산에 산입하는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신탁 등기를 한 지 몇 년이 지났더라도 유류분 분쟁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다.
특히 다른 상속인들이 '악의의 증여'를 주장할 경우 문제가 더 커진다. 손자는 상속인이 아니므로 원칙적으로 사망 1년 전의 증여만 유류분 대상이 된다.
하지만 법무법인(유한) 엘케이비평산 정진열 변호사는 “당사자 쌍방이 유류분 권리자에게 손해를 가할 것을 알고 한 증여(악의의 증여)는 기간 제한 없이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조부의 전 재산을 장손에게 넘기는 것은 다른 자녀들의 유류분을 침해할 것을 알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할아버지도 모르는 '차용증', 최악의 경우 형사처벌까지
변호사들은 예금 2억원에 대한 A씨의 계획이 훨씬 더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다. 상황에 따라 증여와 차용을 오가는 전략은 법적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최악의 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는 “유류분 소송에서는 형식보다 실제 자금 흐름과 당사자 의사를 본다”며 “사후적으로 문서를 폐기하거나 논리를 변경하면 신빙성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조부가 차용증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는 점도 치명적이다. 이런 차용증은 진정한 채무 관계로 인정받기 어렵고, '위장 차용'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법무법인 태일 최지우 변호사는 “유류분은 전체 상속재산과 증여재산을 합산해 계산하므로, 부동산과 예금을 따로 떼어 안전하게 제외되는 구조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나아가 임의로 차용증을 파기하거나 이용하는 행위는 더 큰 법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로버스 법률사무소 신은정 변호사는 “할아버지 모르게 차용증을 작성하거나 임의로 파기하는 행위는 세무조사 시 조세포탈로 처벌받거나 사문서위조 등의 형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방법”이라고 짚었다.
결국 변호사들은 A씨의 계획이 유류분 방어에 효과적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세무 및 형사상 위험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봤다.
이푸름 법률사무소의 이푸름 변호사는 “현재는 형식보다 실질이 훨씬 중요하다”며 “조부의 부양·간병 사실, 생활비 부담, 병원 동행 기록 등을 체계적으로 확보해 기여분을 주장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어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