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랐다' 했다가 패소…'모두가 알고 샀다' 반격 통할까
'나도 몰랐다' 했다가 패소…'모두가 알고 샀다' 반격 통할까
1.2억 배상 위기 매도인, 항소심서 '매수인의 악의' 입증이 관건

5년 전 판 집에 1.2억 원 배상 위기에 처한 매도인이 항소심에서는 '매수인이 하자를 알고 샀다'는 점을 주장하며 반전을 꾀하고 있다. / AI 생성 이미지
5년 전 판 집에 1억 2천만 원을 물어줄 위기에 처했다. 1심에서 '나도 하자를 몰랐다'고 주장했다가 패소한 매도인이, 항소심에서는 '매수인은 모든 것을 알고 샀다'며 180도 다른 전략을 꺼내 들었다.
'종친회 갈등'이라는 숨겨진 변수까지 등장한 법정 공방, 전문가들은 1심 판결을 뒤집을 마지막 기회라고 조언한다.
1.2억 배상 판결…1심 '패착'된 "나도 몰랐다"
해외에 거주하던 A씨는 2019년, 부친을 통해 한국에 있던 지상권 주택을 1억 원에 매도했다. 이 건물은 A씨가 사들이기 전인 2009년부터 건축물대장과 실제 현황이 2배 이상 차이 나는 상태였다. 외관만 봐도 창고 등이 증축된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A씨는 지상권 주택 거래 관행상 매수인과 공인중개사 모두 이런 상태를 인지하고 거래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집을 판 지 5년이 지나, A씨는 1억 2천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휘말렸다. 종친회의 민원으로 관할 군청이 건물의 건축물대장을 직권 말소하자, 매수인이 이를 문제 삼은 것이다.
1심에서 A씨 측은 "하자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변론했지만 결과는 패소였다. 법무법인 대종의 박흥수 변호사는 이에 대해 "1심에서 '매도인도 몰랐다'고 주장한 것은 오히려 매수인의 손해배상 청구를 방어하기 어려운 패착이었다"고 지적했다.
"매수인이 알았다면 책임 없다"…뒤바뀐 항소심 전략
벼랑 끝에 몰린 A씨는 항소심에서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나도 몰랐다'에서 '모두가 알고 한 거래'라는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이 전략의 핵심 근거는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을 규정한 민법 조항에 있다. 법무법인 유안 조선규 변호사는 "민법 제580조 제1항은 매매 목적물에 하자가 있는 때에는 제575조 제1항을 준용하되, 매수인이 하자 있는 것을 알았거나 과실로 인하여 이를 알지 못한 때에는 담보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규정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매수인이 하자를 알고도 샀다는 점을 입증하면 매도인은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수의 변호사들은 이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고 본다. 이푸름 법률사무소의 이푸름 변호사는 "공인중개사 진술, 거래 당시 사진, 항공사진, 면적 차이 자료를 시간순으로 정리하여 '모두 알고 거래했다'는 구조를 명확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라고 조언했다.
손해의 진짜 원인은 '종친회 갈등'?…인과관계 끊을까
이번 사건에는 또 다른 변수가 숨어 있었다. 군청의 직권 말소를 유발한 민원이, 다름 아닌 매수인과 종친회 간의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A씨는 종친회장으로부터 "종친회와 현 소유주(매수인)와 갈등이 있어 민원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 사실이 A씨의 책임을 끊어내는 '결정적 고리'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법무법인(유한) 엘케이비평산의 정진열 변호사는 "이미 직권말소가 이루어졌다면 그 처분의 위법성을 민사 재판에서 직접 다투기는 어렵지만, 말소의 원인이 의뢰인님의 기망이 아니라 종친회의 민원 및 현 소유주와의 갈등 때문이라는 점은 손해배상 책임의 인과관계를 끊는 중요한 방어 논리가 됩니다"라고 강조했다.
손해의 직접적인 원인이 A씨의 판매 행위가 아닌, 매수인이 연루된 외부의 분쟁이라는 점을 부각해 책임의 인과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1심 판결 뒤집을 마지막 기회"…전문가들의 최종 조언
A씨는 자신이 배상하게 될 경우, 이전 소유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도 궁금해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익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법무법인시티 이지훈 변호사는 "하자가 2009~2010년부터 존재했다면 전 매도인의 담보책임은 이미 제척기간(하자를 안 날부터 6개월, 민법 제582조) 경과로 소멸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라며 현 사건의 방어에 집중할 것을 권했다.
결국 승부는 항소심에서 갈릴 전망이다. 박흥수 변호사는 1심의 패소 판결을 뒤집기 위한 강력한 조언을 남겼다. 그는 "항소심에서 중개사의 진술 등을 통해 '매수인 역시 현황 불일치를 이미 알고 거래했다(악의)'는 점을 입증하면 1억 2천만 원의 배상 책임 자체를 전면 기각시킬 강력한 반전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라고 역설했다.
1심의 불리한 판결을 뒤집기 위해선, 매수인이 건물의 법적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이를 감수한 거래였다는 점을 재판부에 얼마나 설득력 있게 증명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