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장 없는 성범죄 수사, '친절한' 경찰 전화의 함정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고소장 없는 성범죄 수사, '친절한' 경찰 전화의 함정

2025. 09. 15 10:15 작성
최회봉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caleb.c@lawtalknews.co.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피해자 진술만으로 피의자 특정…전문가들 “변호인 없는 첫 조사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 초래”

어느날 A씨에 대한 경찰의 '친절한' 소환 전화 한 통으로, 고소장도 없이 성범죄 수사가 시작됐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카톡 증거 없다더니 '피의자' 낙인…경찰의 '친절한' 소환 전화, 그 이면엔


어느 날 갑자기 성범죄 피의자가 된 A씨, 경찰의 '친절한' 전화 한 통에 그의 평온했던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소장도, 명확한 증거도 없이 시작된 수사 앞에서 그는 깊은 혼란에 빠졌다.


“증거도 고소장도 없다는데”…유령처럼 나를 찾아낸 경찰


사건의 시작은 한 통의 전화였다. 자신을 성범죄 사건 담당 수사관이라 밝힌 경찰은 “해바라기센터(성범죄 피해자 지원기관)에 신고가 접수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통보했다. A씨가 무슨 혐의냐고 되묻자, 수사관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통신사를 통해 신원을 특정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수사관의 다음 말은 A씨를 미궁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핵심 증거가 될 카카오톡 대화 내용은 “복구가 안 돼서 모른다”는 것이었다.


A씨는 곧장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자신을 고소한 서류를 확인하려 했지만, 경찰의 답변은 “고소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증거도, 고소장도 없이 어떻게 영장을 발부받고 자신의 신원을 특정했는지, A씨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 상황이 법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피해자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만 있다면, 법원은 그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 경찰이 확보한 영장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 전체가 아닌, 피해자가 지목한 대화 상대방의 신원(연락처, 이름 등)을 확인하기 위한 ‘통신자료제공요청 허가서’일 가능성이 높다. 즉, 피해자의 진술이 수사를 개시하고 피의자를 특정할 충분한 근거가 된 셈이다.


“걱정 마세요, 구속 안 됩니다”…수사관의 달콤한 속삭임, 믿는 순간 끝


A씨를 가장 흔든 것은 “구속되는 건 아니니 그냥 와서 편하게 대답만 하라”는 수사관의 말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친절한 안내’야 말로 피의자가 빠지기 쉬운 가장 위험한 심리적 덫이라고 경고한다. 피의자의 경계심을 낮춰 더 많은 진술을 얻어내려는 전형적인 수사 기법이라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조율의 조가연 변호사는 “수사관의 ‘구속되지 않는다’는 말은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약속”이라며 “조사 과정에서 불리한 진술을 하거나 혐의를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그 진술을 근거로 언제든 구속영장이 청구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성범죄는 물증 없이 진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피의자의 첫 진술이 사건 전체의 유무죄를 가르는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


첫 조사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골든타임'을 지킬 유일한 방법


결론적으로 법률 전문가들은 ‘변호인 없는 나 홀로 출석’은 절대 금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떤 혐의를 받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경찰의 질문 의도를 파악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웨이브의 이창민 변호사는 “고소장이 없다면 경찰이 던지는 질문을 통해 혐의를 역으로 추적하고 방어 논리를 세워야 하는데, 이는 법률 전문가의 조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변호사는 조사에 동석해 불리한 질문을 차단하고 진술 방향을 바로잡는 ‘방패’ 역할을 한다. 또한 정보공개청구 등 법적 절차를 통해 혐의 사실을 명확히 파악하고 방어 전략을 세울 수 있다.


A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함께 출석하겠다’며 조사 일정을 미룰 정당한 권리가 있다. 수사관의 친절한 안내 뒤에 숨은 법의 칼날을 보지 못하고 무방비 상태로 조사실 문을 여는 순간, 당신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을지 모른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