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익 알바로 4천만원 잃고, 되레 송금책 몰려…전문가들 “피해자 입증 못하면 실형 가능"
고수익 알바로 4천만원 잃고, 되레 송금책 몰려…전문가들 “피해자 입증 못하면 실형 가능"
4천만원 사기 피해자가 보이스피싱 공범 된 사연

고수익 알바 사기로 4천만 원을 잃은 피해자가 돈을 찾으려다 보이스피싱 송금책이 되어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캐럿 생성 이미지
고수익 미끼에 4천만원을 잃은 피해자가 돈을 되찾으려다 되레 보이스피싱 송금책으로 전락해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피해자에서 한순간에 피의자 신분으로 추락한 A씨의 사연은, 달콤한 유혹 뒤에 숨은 보이스피싱 범죄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영상만 보면 돈 준다더니…달콤한 유혹의 시작
시작은 평범한 ‘영상 시청 아르바이트’였다.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일거리를 찾던 A씨는 간단한 영상 시청만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에 솔깃했다.
처음 몇 번은 약속대로 돈이 입금됐고, A씨는 의심 없이 조직을 신뢰했다. 비극은 ‘고수익 미션’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왔다. 더 큰 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에 A씨는 거액을 투자했고, 눈 깜짝할 사이 4,000만 원을 잃었다.
'잃은 돈 찾아줄게'…피해자를 공범으로 만든 덫
절망에 빠진 A씨에게 사기 조직은 뜻밖의 제안을 건넸다. 잃은 돈을 만회하게 해주겠다며 ‘재무 파트너’ 역할을 제안한 것이다. 조직 담당자는 “전혀 위험한 일이 아니다. 당신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며 A씨를 안심시켰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안을 수락한 A씨는 자신의 계좌로 들어온 돈의 10%를 수수료로 챙기고 나머지를 조직이 지정한 계좌로 보내는 일을 맡았다. 약 한 달간 A씨의 계좌를 거쳐 간 돈은 무려 4,000만 원에 달했다. 그러던 지난 12월 22일, 경찰서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피해자인가, 공범인가…'미필적 고의'가 가를 운명
A씨는 자신이 보이스피싱 범죄의 ‘송금책’으로 이용됐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 범죄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항변했지만, 법의 잣대는 냉정하다. 법률 전문가들은 A씨가 범죄에 가담한다는 ‘미필적 고의(범죄 발생 가능성을 알면서도 용인하는 심리)’가 있었는지를 핵심 쟁점으로 꼽는다.
이재용 변호사(JY법률사무소)는 “정확한 내용을 모르고 가담했더라도 최근에는 매우 중하게 처벌한다”며 “단순 가담자도 6개월에서 2년 정도 실형이 선고되는 사례가 많다”고 경고했다. 윤형진 변호사(법률사무소 명중) 역시 “단 몇 마디 진술 때문에 사기방조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억울함 벗으려면? '나는 피해자' 입증이 관건
A씨처럼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변호사들은 ‘피해자’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윤준기 변호사(법률사무소 새율)는 경찰 조사 시 ▲처음에는 단순 알바로 알고 시작한 점 ▲담당자의 적극적인 기망이 있었다는 점 ▲본인도 상당한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 사기 조직과 나눈 모든 대화 기록, 특히 “위험한 일이 아니다”라고 안심시킨 내용과 자신의 피해 사실을 입증할 금융 거래 내역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백서준 변호사(오엔 법률사무소)는 “본인이 잃은 돈은 고소를 진행하고, 계좌로 들어온 돈에 대해서는 무혐의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첫 진술에 달린 미래…살얼음판 위에 선 A씨
물론 무혐의를 장담할 수는 없다. 김준성 변호사(법무법인 공명)는 “보이스피싱 관련 혐의가 적용되면 집행유예 없는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도 많다”며 수사 초기부터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강조했다.
결국 A씨의 운명은 법원이 그의 행동을 ‘돈이 급해 범죄 가능성을 눈감은 공범’으로 보느냐, 아니면 ‘사기 조직의 교묘한 속임수에 넘어간 또 다른 피해자’로 보느냐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경찰서 조사실에서 내뱉는 첫 진술이 그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는, 그야말로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