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빠진 통지서, 무면허 운전자 만든 황당한 실수
'호수' 빠진 통지서, 무면허 운전자 만든 황당한 실수
경찰 과실로 면허정지 통보 못 받아…법조계 “무죄 다툴 여지 커”

벌점 초과로 면허가 정지된 운전자가 경찰의 주소 오기재 실수로 통지서를 받지 못했다. / AI 생성 이미지
벌점이 초과돼 면허가 정지됐지만, 정작 운전자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경찰이 보낸 면허정지 통지서 주소에 ‘호수’가 빠져 단 한 번도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계를 위해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가 무면허 운전자로 적발된 한 시민의 사연이다.
법조계는 행정 절차의 중대한 하자를 지적하며 “처분 효력 자체를 다투거나 고의가 없었음을 입증해 무죄를 주장해 볼 만하다”고 분석했다.
통지서 기다리다 날벼락…“호수 빠져 반송”
사건의 발단은 2026년 1월 27일, A씨가 교통법규 위반으로 벌점 30점을 추가로 받으면서부터다. 누적 벌점이 45점이 되며 면허정지 대상이 된 A씨는 당시 단속 경찰관으로부터 “정지 전에 통보가 갈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이후 A씨는 통지서를 기다리며 약 한 달 반 동안 운전을 멈췄다. 그 사이 문자나 전화는 물론 우편함에 어떤 고지서도 도착하지 않았고, 정부민원포털 ‘민원24’를 통해서도 정지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
생계가 막막해진 A씨는 결국 4월 10일부터 운전을 재개했지만, 불과 9일 만에 신호 위반 단속 과정에서 면허정지 상태라는 사실을 통보받고 무면허 운전 혐의로 적발됐다.
경찰서에 확인한 결과, 면허정지 통보 등기우편은 A씨 주소의 ‘호수’가 누락된 채 발송돼 두 차례 모두 반송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의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성실한 시민을 범법자로 만든 셈이다.
1차 쟁점: 효력 없는 정지처분, 송달 하자가 핵심
법조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의 핵심을 ‘행정처분의 송달 하자’로 꼽았다. 면허정지 같은 불이익 처분은 당사자에게 적법하게 전달(송달)되어야만 효력이 발생하는데, A씨는 통지서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유안 조선규 변호사는 “등기우편 2회가 주소 하자로 반송되어 본인이 실제 수령하지 못했고, 그 이후 적법한 공고도 없었다면, 정지 처분이 아직 효력을 발생하지 않았다고 다툴 여지가 크다”고 명확히 짚었다.
다만 행정청이 우편 반송 후 ‘공시송달’(관보나 게시판에 공고해 송달을 갈음하는 절차)을 거쳤는지가 변수가 될 수 있다.
서울종합법무법인 서명기 변호사는 “여기서 중요한 변수는 공시송달 여부”라며 “등기 반송 이후 행정청이 적법하게 공시송달 절차를 진행했다면, 그 시점부터는 효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행정청의 과실로 주소가 잘못됐다면 공시송달의 효력마저 다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무법인 우선 이민철 변호사는 “설령 경찰 측에서 우편 반송을 이유로 게시판 등에 공시송달을 진행했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행정청의 실수로 주소가 누락된 것이라면 그 공시송달 자체의 절차적 적법성을 다투어 면허정지 처분의 효력을 부인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법률사무소 인도 안병찬 변호사 역시 “행정청이 호수를 누락한 채 발송하여 반송된 경우, 이는 소재불명에 해당하지 않아 공시송달로 대체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관련 판례에 따르면 무죄 주장 가능한 사안으로 보인다”고 힘을 실었다.
2차 쟁점: 몰랐는데 어떻게 처벌? ‘고의성’ 부정 가능
설령 면허정지 처분의 효력이 인정되더라도, A씨가 처벌을 피할 길은 남아 있다. 무면허 운전은 면허가 정지된 사실을 ‘알면서도’ 운전한 경우에 성립하는 ‘고의범’이기 때문이다.
A씨처럼 통지를 기다리며 스스로 운전을 중단하고, 온라인으로 직접 확인까지 한 사정은 ‘고의가 없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이동규 변호사는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그는 “설령 효력이 인정되더라도, 질문자님처럼 통지를 전혀 받지 못했고 일정 기간 운전을 중단하는 등 주의 의무를 다한 정황이 있다면, 고의를 부정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즉, A씨가 면허정지 사실을 알 수 없었던 객관적 상황과 이를 피하기 위해 노력한 점을 입증하면 무죄를 다툴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A씨의 사례는 단순히 벌점을 초과했다는 사실만으로 무면허 운전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 절차의 적법성과 운전자의 인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따져야 하는 복잡한 법적 다툼의 영역에 있다.
전문가들은 조사 초기 단계부터 등기 반송 기록 등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고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법리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