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살아있을 땐 동거녀에게 어버이날 선물…사망 후 "가사도우미"라며 9억 소송한 자녀들
아버지 살아있을 땐 동거녀에게 어버이날 선물…사망 후 "가사도우미"라며 9억 소송한 자녀들
치매 앓던 아버지, 자신 돌본 동거녀에게 7억 증여
자녀들 부당이득 반환 소송
법원 "어버이날 선물까지 챙겨놓고 가사도우미 주장은 모순"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아버지를 극진히 돌본 동거녀에게 명절과 어버이날 선물까지 챙겨 보냈던 자녀들은, 아버지가 그녀에게 거액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자 "단순 가사도우미에 불과하다"며 9억 원대 소송을 제기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3부(재판장 송인권)는 최근 사망한 A씨의 자녀 4명이 아버지의 동거녀 B씨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전부 패소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아파트 팔아 7억 줬더니… "아버지는 치매, 증여는 무효"
사건의 발단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본처가 사망하자 1995년경부터 내연관계였던 B씨와 동거를 시작했다. B씨는 치매 확진을 받고 낙상 사고로 거동마저 불편해진 A씨의 병원 진료를 동행하며 곁을 지켰다.
A씨는 2021년 10월 자신의 아파트를 14억 원에 매도한 뒤, 2022년 3월 B씨에게 7억 원을 이체하고 세무사를 통해 증여 신고까지 마쳤다.
A씨 명의 계좌에서 B씨에게 흘러간 돈은 총 21억여 원이었고, 이 중 B씨가 다시 반환하거나 자녀에게 이체한 돈을 제외하면 약 9억 원이 남았다.
A씨가 2024년 7월 노환으로 사망하자, 자녀들은 이 9억 원을 돌려달라며 법정 다툼을 시작했다.
자녀들의 주장은 단호했다. 아버지가 중증 치매로 인해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의사무능력 상태였으므로, 증여 자체가 무효라는 것이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B씨를 '입주 가사도우미'라고 깎아내리며 무단으로 예금을 인출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가사도우미에게 어버이날 선물을?" 법원이 짚어낸 모순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가 주목한 결정적 모순은 바로 자녀들이 챙긴 어버이날 선물이었다.
재판부는 "자녀들은 소송에서 B씨가 가사도우미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B씨에게 도우미나 간병인 월급을 지급한 바가 없다"며 "오히려 명절이나 어버이날에 B씨의 집으로 아버지와 B씨의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평소에는 B씨를 사실상의 배우자이자 아버지를 돌보는 보호자로 예우해놓고, 돈 문제가 불거지자 단순 고용인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 사람에게 토 달지 마라"… 쐐기 박은 아버지의 육성
여기에 아버지가 생전 자녀들에게 남긴 음성 녹음은 사건의 쐐기를 박았다.
녹음 파일에서 A씨는 "너희들한테 몇 마디 한다. 내가 건강이 안 좋아지는 걸 느낀다. 그래도 B 이 사람이 돌봐줘서 고맙고 감사하고 미안하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내가 집을 팔았다. 살아생전 쓰고 남은 돈은 (자녀) C를 돌보는 데 쓰고, 일부는 나를 돌보는 B를 줄 거다"라며 "너희들은 B 이 사람한테 토 달지 말고, 아픈 나를 돌보느라 고생하는 이 사람 마음 상하게 안 했으면 한다"고 명확히 당부했다.
법원은 이 녹음 내용이 A씨 명의의 유언장 내용과 일치해 신빙성이 높다고 봤다.
또한 아파트 매매를 중개한 공인중개사와 세무사, 법무사 등 전문가 3인 모두 "A씨가 직접 방문해 서류를 작성했으며 의사능력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한 점도 근거가 됐다.
결국 재판부는 "A씨가 7억 원을 지급할 당시 그 행위의 의미나 결과를 판단할 수 없는 의사능력 흠결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나머지 금전 역시 6년간의 공동 생활비와 간병비 등에 충당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결했다.
끝까지 아버지를 돌본 동거녀를 향해 핏대를 세웠던 자녀들의 9억 원대 소송은, 그들이 과거 보냈던 어버이날 선물과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목소리 앞에 결국 완패로 막을 내렸다.
[참고]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제3민사부 2024가합200911 판결문 (2025. 11. 21.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