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 출입금지' 황당한 월세집 특약, 법적 효력은?
'남자친구 출입금지' 황당한 월세집 특약, 법적 효력은?
가계약 후 입주까지 마쳤는데…집주인이 뒤늦게 보낸 계약서 속 '혼숙 금지' 조항. 법률 전문가들 “임차인에게 불리한 조항, 따를 의무 없다” 만장일치

월세 입주 후 집주인이 '이성 혼숙 금지' 특약을 일방적으로 추가했더라도, 이는 임차인에게 불리한 약정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무효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월세 냈는데 남친 오면 나가라고요?…입주 끝나자 날아온 '연애 금지' 계약서
꿈에 그리던 독립. 하지만 새집에 입주한 A씨는 며칠 뒤 날아온 계약서 한 장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가계약 때는 없던 '혼숙 시 자진 퇴거'라는 황당한 특약이 버젓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장거리 연애 중인 A씨에게 남자친구의 방문은 한 달에 몇 번뿐인 소중한 시간. 이마저 '계약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미 이사까지 마친 상황, A씨는 이 독소 조항에 서명해야만 할까.
폭탄처럼 날아온 특약, 법은 누구 편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A씨는 이 특약을 따를 의무가 없다. 법률 전문가들은 A씨의 임대차 계약이 '가계약금 입금 및 입주' 시점에 이미 성립했다고 본다. 계약의 주요 내용에 합의하고 실제 거주를 시작한 이상, 계약 성립 이후 집주인이 일방적으로 추가한 조항은 효력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청백 공동법률사무소의 박성빈 변호사는 "간헐적으로 외부인이 와서 며칠 머무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규정은 임차인에게 불리한 조항으로 효력이 없다고 볼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이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제10조(강행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 조항은 '이 법에 위반된 약정으로서 임차인에게 불리한 것은 그 효력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어, 임차인의 기본적인 주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특약은 무효가 될 수 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의 조기현 변호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주 괘씸한 임대인"이라며 "해당 조항에 서명할 수 없으므로 삭제를 요구하고, 불응할 경우 오히려 임대인에게 책임을 물어 보증금 반환은 물론 계약금의 두 배 상환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강경한 대응을 주문했다.
'손님 방문'이 불법?…'정상적 사용'과 '불법 전대'의 경계
집주인이 문제 삼는 '혼숙'은 법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전문가들은 A씨 남자친구의 방문은 임차인의 '정상적인 주거 사용' 범위에 해당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임차권을 타인에게 넘기는 '전대(세입자가 다른 사람에게 다시 세를 놓는 것)'나 '양도'와는 명백히 다르다.
라미 법률사무소의 이희범 변호사는 "남자친구가 한 달에 몇 번 자고 가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사회상규상 옳아 보이지도 않는다"며 "집주인은 이를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계약해지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신사 법무법인의 장휘일 변호사 역시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에게 불리한 조항은 무효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 특약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거들었다.
결국 A씨의 남자친구 방문은 집을 잠시 사용하는 손님의 방문일 뿐, 집주인이 계약 해지까지 거론할 수 있는 위반 행위가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진다.
'갑질 집주인'에 맞서는 현실적 대응법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지만, 집주인과의 불편한 관계는 세입자에게 큰 스트레스다. 전문가들은 감정적인 대응보다 법적 절차에 따른 단계적 대응을 권고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내용증명'을 보내 특약에 대한 이의를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것이다. 내용증명은 '계약 체결 당시 합의되지 않은 조항이므로 무효'라는 임차인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향후 분쟁 시 중요한 증거 자료가 된다.
만약 집주인이 막무가내로 서명을 강요한다면, 특약 조항에 붉은색으로 두 줄을 긋고 '본 특약에 동의하지 않으며, 해당 조항은 무효임을 확인함'이라는 문구를 적은 뒤 서명하는 방법도 있다. 분쟁이 격화될 경우, 법원에 가기 전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해 저렴하고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부당한 특약은 더 이상 당신의 '집'을 위협할 수 없다. 법은 홀로 고민하는 세입자가 아닌, 자신의 권리를 학습하고 당당히 주장하는 세입자의 편에 서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