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아가 잡은 '비접촉 뺑소니', 처벌 가능할까?
쫓아가 잡은 '비접촉 뺑소니', 처벌 가능할까?
보행신호 무시한 차량에 '쿵'...피해자 추격에도 도주죄 성립, 핵심은 '진단서'

우회전 차량에 놀라 넘어진 자전거 운전자를 두고 50m를 도주한 운전자는 피해자가 추격해 붙잡았어도 '도주치상죄'에 해당할 수 있다./ AI 생성 이미지
파란불 횡단보도를 건너던 자전거, 서행 없이 우회전하던 차량에 놀라 급정거 후 넘어져 다쳤다. 운전자는 사고를 보고도 50m를 달아났지만, 피해자가 쫓아가 붙잡았다.
직접 부딪히지 않았고, 결국 붙잡혔다는 이유로 뺑소니가 아닐까? 법조계는 피해자의 '상해'가 입증된다면 명백한 도주치상죄이며, 추격해 붙잡은 사실이 오히려 도주 의사를 증명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파란불에 쿵"... 차는 그대로 50m 내뺐다
자전거를 타고 파란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A씨. 우회전하던 차량이 멈추거나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진입하는 바람에 아찔한 순간을 맞았다.
A씨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자전거와 함께 아스팔트 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하지만 운전자는 A씨를 보고도 아무런 조치 없이 약 50m를 그대로 주행해 현장을 벗어났다.
넘어진 몸을 추스른 A씨는 곧장 차를 쫓아갔고, 결국 운전자를 붙잡아 경찰 및 보험 접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운전자는 차량 파손에 대한 '대물 접수'만 해 줬을 뿐, A씨의 부상에 대한 '대인 접수'는 거부했다.
A씨는 "분명히 나를 보고도 도망갔는데, 내가 쫓아가 잡았다는 이유로 뺑소니(도주치상)에 해당하지 않는 건지 궁금하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쫓아가 잡았어도, 도주는 이미 완성"
법조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를 붙잡았다는 사실이 뺑소니 혐의를 없애 주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오히려 도주의 의사를 명백히 보여주는 정황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도주치상죄는 사고 운전자가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상 조치를 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했을 때 '기수'(범죄의 완성)에 이른다.
법무법인 베테랑 윤영석 변호사는 "가해자가 50m를 도주한 뒤 질문자님에게 붙잡혔더라도, '사고 발생 사실을 알고도 구호 조치 없이 현장을 이탈한 시점'에 이미 도주치상죄는 기수에 이른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즉, 현장을 떠난 순간 범죄는 성립했으며, 나중에 붙잡힌 것은 그 이후의 사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법무법인(유한) 안팍 오정석 변호사 역시 "피해자가 추격하여 가해자를 멈춰 세웠다는 사실은 가해자가 스스로 도주의 의사를 가지고 현장을 떠났음을 반증하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고 지적했다.
비접촉 사고, '이것' 없으면 뺑소니 아니다
다만 '도주치상' 혐의가 성립하기 위한 절대적인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피해자의 '상해'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아무리 운전자가 뺑소니를 했더라도, 피해자가 다치지 않았다면 '도주치상'이 아닌 '사고 후 미조치' 등 비교적 가벼운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변호사들은 하나같이 '상해진단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법무법인 우선 이민철 변호사는 "도주치상 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수사기관에 제출되어야 한다"며 "병원 진료를 통해 발급받은 상해진단서를 수사기관에 신속히 제출하여 상해 사실을 공식적으로 입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변호사 김일권 법률사무소의 김일권 변호사도 "의뢰인이 경찰서에 상해진단서를 제출하여야, 상대방이 도주치상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못 박았다.
결국 이번 사건의 향방은 운전자의 신호 위반 및 도주 사실을 입증할 CCTV와 더불어, A씨가 넘어져 다쳤다는 사실을 증명할 상해진단서 확보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