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웠는데 왜?'…'찰칵' 한번에 성범죄자 될 수 있다
'지웠는데 왜?'…'찰칵' 한번에 성범죄자 될 수 있다
성관계 중 촬영 발각, 현장 삭제에도 2주 뒤 압수수색

성관계 중 동료를 불법 촬영한 남성이 현장에서 사진을 삭제했음에도 경찰 수사를 받게 되었다. / AI 생성 이미지
함께 일하던 동료와 성관계를 갖던 중 터진 카메라 플래시. 발각 즉시 사진을 삭제하고 휴지통까지 비웠지만, 2주 뒤 돌아온 것은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이었다.
성범죄 전과 위기에 놓인 남성의 사연에 법률 전문가들은 '피해자와의 합의'가 처벌 수위를 낮출 핵심 열쇠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합의가 '면죄부'는 아니라고 경고한다.
'보는 앞에서 지웠는데…' 2주 만에 닥친 압수수색
사건은 아르바이트 동료 사이인 A씨와 여성 B씨 사이에서 벌어졌다. 함께 술을 마신 두 사람은 성관계를 가졌고, 이 과정에서 A씨가 휴대전화로 촬영을 시도하다가 플래시가 터졌다.
B씨는 즉시 삭제를 요구했고, A씨는 B씨가 보는 앞에서 사진을 지우고 휴지통까지 비우는 모습을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2주 뒤 B씨의 신고로 경찰은 A씨의 집을 찾아와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디지털 포렌식 검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A씨에게 “피해자와 합의를 잘하면 기소유예가 가능하거나 벌금형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지만, A씨는 생소한 법적 절차 앞에 불안에 떨고 있다.
범죄는 '촬영' 순간 성립…'삭제'는 양형 참작 사유일 뿐
다수의 변호사들은 A씨가 사진을 즉시 삭제했더라도 범죄 성립 자체를 피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죄(카촬죄)는 상대방 의사에 반해 촬영하는 '행위' 자체로 성립하는 '즉시범'이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서울제일 신정현 변호사는 “카촬죄는 촬영 당시 성립하는 것이므로, 뒤에 지웠다거나 하는 사정으로 무죄로 되지는 않습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즉, 촬영 후 삭제는 범죄의 성립 여부가 아닌 처벌 수위를 정하는 '양형' 단계에서 반성의 의미로 참작될 사유일 뿐이라는 것이다.
'기소유예'로 가는 길, 열쇠는 '피해자 합의'
그렇다면 A씨가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피해자와의 합의'를 절대적 전제 조건으로 꼽았다.
경찰 출신인 캡틴법률사무소 홍성환 변호사는 “합의를 잘 하면 초범이고, 즉시 지운 점 등이 모두 인정되어 기소유예가 충분히 가능합니다”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합의 과정에서의 2차 가해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부장검사 출신인 법무법인(유한) 동인 이철호 변호사는 “직접 피해자와 합의를 시도하는 경우에는 2차적 가해 논란도 생길 수 있습니다”라며 변호인을 통한 신중한 접근을 조언했다.
합의는 '만능' 아냐…'n번방' 이후 높아진 처벌 수위
하지만 피해자와의 합의가 기소유예를 보장하는 '만능 열쇠'는 아니라는 경고도 빗발쳤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단이 매우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법률사무소 필승의 김준환 대표변호사는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경우 n번방 사건 이후로 처벌수위가 매우 높아져 최근에는 초범이어도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라고 현재의 엄중한 분위기를 전했다.
법무법인 서울제일 신정현 변호사 역시 “카촬죄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기는 사실상 쉽지 않습니다. 벌금형에 그친다면 다행이라 생각하시고 피해자와 합의하고 반성문 등을 제출하셔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벌금형만 선고받더라도 성범죄 전과 기록이 남고 신상정보 등록 및 취업제한 등 무거운 보안처분이 뒤따를 수 있어, 수사 초기부터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법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