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음주 블랙아웃' 주장, 법정 향한 외줄타기
성범죄 '음주 블랙아웃' 주장, 법정 향한 외줄타기
법조계 '최악의 자충수' 경고 속 '녹음 파일' 반전 카드로… 법원 판단은?

성범죄 피의자의 '음주 블랙아웃' 주장은 법정에서 통하기 어렵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나요”…성범죄 피의자의 ‘음주 블랙아웃’ 주장은 법정에서 통할까.
성범죄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A씨가 내놓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는 한마디. 이 절박한 외침은 그를 구원할 동아줄이 될까, 아니면 혐의를 인정하는 족쇄가 될까.
한 남성의 운명을 두고 법률 전문가들의 분석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기억상실 주장은 최악의 자충수” 변호사들의 싸늘한 경고
대다수 변호사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진술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경고했다. 혐의를 명확히 부인하지 못하면서, 피해자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에 힘을 실어주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리버티 김지진 변호사는 “기억이 안 난다는 진술로 일관하면 혐의를 결코 부인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고, 법무법인대한중앙 조기현 변호사 역시 “기억이 안 난다는 진술은 부정적 영향만 있을 뿐”이라며 “블랙아웃 상태만으로는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사물 변별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미약한 상태)으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범행을 암묵적으로 시인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냉정한 분석이다.
반전의 열쇠 ‘녹음 파일’…기억상실 진정성 입증할까
하지만 일부 변호사들은 A씨가 가진 ‘녹음 파일’이 판을 뒤집을 ‘조커’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A씨는 사건 직후로 추정되는 시점, 여성과 물건을 찾는 문제로 다툰 대화와, 다음 날 경찰 관계자로부터 ‘여성의 물건 행방을 모르냐’는 질문을 받자, “물건을 잃어버렸어요?”라고 놀라며 반문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 파일을 가지고 있었다.
12년간 경찰로 재직한 법률사무소 새율의 최성현 변호사는 “새벽에 물건 분실로 다투는 내용과 다음날 파출소로 가며 보인 놀란 반응은, (A씨의 주장이) 단순히 범죄 사실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이 아닌 실제 기억상실 상태였을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경태 법률사무소의 김경태 변호사 역시 “녹음 내용에서 드러나는 의뢰인의 반응이 진정성 있게 보인다는 점은 유리한 요소”라고 평가했다.
법원의 냉정한 시선 “기억만 없을 뿐, 의식은 있었다”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법원은 ‘알코올 블랙아웃’을 어떻게 판단할까. 핵심은 의식을 완전히 잃는 ‘패싱아웃(Passing Out)’과 기억만 못 하는 ‘블랙아웃(Blackout)’을 엄격히 구분한다는 점이다.
법원은 단순히 술에 취해 기억을 못 하는 블랙아웃 상태만으로는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없었다고 보지 않는다.
실제 대구지방법원 판례(2021고합453)는 블랙아웃 상태에 대해 “기억장애 외에 인지기능이나 의식 상태의 장애에 이르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즉, 자신의 의지로 행동은 했지만 기억만 하지 못하는 상태는 법적 감경 사유가 되기 어렵다는 의미다.
“살고 싶다면 전략부터”…딜레마에 빠진 A씨의 출구는
결론적으로 법조계는 A씨의 상황이 매우 위태롭다고 입을 모았다. ‘기억이 안 난다’는 애매한 태도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혐의를 전면 부인할 것인지, 아니면 인정하고 선처를 구할 것인지 명확한 노선 설정이 시급하다는 조언이 쏟아졌다.
조기현 변호사는 “최소 두 명 이상의 변호사와 상담 후 혐의를 부정할지, 인정하고 정상변론을 전개할지부터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A씨의 운명은 ‘기억상실’이라는 안개 속에서 얼마나 명확한 증거를 찾아내고, 일관된 법적 논리를 구축하느냐에 달리게 됐다. 피해자의 진술이 강력한 증거가 되는 성범죄 사건에서, 어설픈 항변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냉정한 경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