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할 거면 나가라”... 억울함 풀려고 거짓말탐지기 응했다가 ‘유죄 낙인’ 공포
“거짓말할 거면 나가라”... 억울함 풀려고 거짓말탐지기 응했다가 ‘유죄 낙인’ 공포
결백 증명하려다 ‘자백 압박’의 덫에… 수사관의 한마디, 법정 가면 ‘무효’될 수 있다

A씨가 결백을 증명하려 받은 거짓말탐지기 조사가 '자백 강요'의 덫으로 돌변했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거짓말할 거면 나가라”… 결백 증명하려다 '자백 강요' 덫에 걸린 피의자, 법률 전문가들 “명백한 위법 수사”
결백 증명하려 받은 거짓말탐지기 조사가 '자백 강요'의 덫으로 돌변했다. “거짓말할 거면 나가라.” 수사관의 이 한마디가 억울한 피의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결백을 증명할 마지막 동아줄이라 믿었던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오히려 위법 수사의 증거가 될 수 있는 ‘덫’이었다. 성범죄 피의자로 몰린 A씨는 결백을 증명하겠다며 경찰의 거짓말탐지기 조사 제안을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진실을 규명하리라 믿었던 조사실은 유죄를 전제한 압박의 무대였다.
“그건 그쪽 생각이죠”… 조사실은 이미 유죄 법정
조사 당일, A씨는 면담 단계부터 숨이 막혔다. 수사관은 사실관계를 정리한다면서 노골적인 유도심문을 시작했다. “~~것 아닌가요? 그러면 ~~가 맞지 않을까요?”라며 자신의 주관을 강요했고, A씨가 반박하자 “그건 그쪽 생각이죠”라며 면박을 줬다.
A씨의 머릿속은 ‘이미 나를 유죄로 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압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A씨가 심리적 부담감에 잠시 조사를 멈추려 하자, 수사관은 “여기서 거짓말할 거면 차라리 나가라”며 쏘아붙였다. 마치 조사실을 나가는 순간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힐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그 조사, 법정 가면 쓸모없다”… 변호사들이 ‘위법’이라 입 모은 이유
A씨의 사연에 법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부적절한 수사”라고 지적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피검사자의 심리적 안정이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수사관의 행위가 이를 정면으로 위배했다는 것이다.
12년간 경찰로 재직했던 최성현 변호사(법률사무소 새율)는 “검사관의 유도심문과 압박성 발언은 검사의 신뢰성을 훼손할 수 있는 중대한 하자”라며 “이러한 환경에서 도출된 결과는 증거능력이 부정될 여지가 있다”고 잘라 말했다.
김경태 변호사(김경태 법률사무소) 역시 “대법원은 검사의 신뢰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부 요인이 있을 경우 증거능력을 부정한다”며 “수사관의 부적절한 언행은 검사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결정적 요소”라고 설명했다.
“동의했으니 괜찮다?”… 대법원이 거짓말탐지기를 믿지 않는 까닭
법원이 거짓말탐지기 결과를 증거로 인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법원은 마치 정밀기계를 다루듯 까다로운 조건을 내건다. 거짓말이 미세한 심리 변화를 일으키고, 그 변화가 혈압이나 맥박 같은 생리적 반응으로 나타나며, 이 반응을 기계가 정확히 포착해 거짓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는 세 가지 전제가 모두 증명돼야만 한다.
A씨의 경우는 어떨까. “나가라”는 수사관의 고압적인 태도 앞에서 A씨가 느낀 것은 거짓말에 대한 심리적 동요가 아닌, '억울함'과 '공포'였다. 이런 극심한 스트레스는 혈압과 맥박을 멋대로 뛰게 만들어, 기계가 탐지한 반응이 거짓말 때문인지 압박감 때문인지 구별할 수 없게 만든다. 결국 검사의 정확성 자체가 무너지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수사관의 강압이 진술의 ‘임의성’(자발성)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형사소송법은 강압이나 협박으로 얻어낸 진술은 증거로 쓸 수 없다고 명시한다. “나가면 거짓말쟁이”라는 식의 발언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위축시키는 명백한 심리적 강제에 해당할 수 있다.
억울함 풀려다 ‘덫’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변호사들은 A씨가 겪은 부당한 조사 방식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변호사를 통해 조사 결과의 신뢰성을 문제 삼고 진술을 바로잡는 것이 급선무다.
남희수 변호사(더신사 법무법인)는 “변호사를 통해 진술 번복이나 조서 내용 수정을 요청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더 나아가 “담당 경찰서 감찰부서나 상급 기관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수사관 교체를 요청하는 방법도 있다”고 김전수 변호사(법무법인 한별)는 덧붙였다.
그러나 신중론도 있다. 검사 출신 서아람 변호사(변호사 서아람 법률사무소)는 “단순히 유도심문을 이유로 한 교체 신청은 받아들여지기 어렵고 수사관과 관계만 나빠질 수 있다”며 “혐의 자체에 대한 방어에 집중하는 것이 더 실익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전문가들의 의견은 하나로 모인다. 성범죄와 같이 진술의 신빙성이 결정적인 사건일수록, 수사 초기 단계부터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자신의 방어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백을 증명하려는 순수한 의도가 오히려 자신을 옥죄는 덫이 되지 않도록, 수사 과정의 모든 절차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