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투가 똑같네, 범인 맞지?'…IP 없는 사이버 명예훼손, '문체'만으로 처벌될까
'글투가 똑같네, 범인 맞지?'…IP 없는 사이버 명예훼손, '문체'만으로 처벌될까
과거 사이버 명예훼손 전과자 A씨, 누군가 옛 글을 도용해 '가짜 범인'으로 몰려... 법조계 "객관적 증거 없인 유죄 불가" 일축

과거 명예훼손 글과 문체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한 남성이 피의자가 되었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과거 썼던 글과 문체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사이버 명예훼손 피의자가 된 한 남성의 사연이다..
"문체가 거의 일치하는데요?" 덫이 된 질문
과거 사이버 명예훼손으로 벌금형을 받았던 A씨는 최근 다시 경찰서의 문을 두드려야 했다. 누군가 A씨가 과거에 썼던 비방글을 그대로 복사해 인터넷에 유포했고, 경찰은 A씨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다. A씨를 범인으로 지목할 IP 주소나 접속 기록(로그) 같은 객관적 증거는 전무했다. 경찰이 내민 유일한 근거는 '문체의 유사성'이었다.
"제가 쓴 글이 아닙니다." A씨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이어진 수사관의 질문은 그를 궁지로 몰았다. "지난번 증거물과 지금 게시물의 문체가 거의 일치하는데 동의하시나요?"
제3자가 과거 글을 통째로 베껴 썼으니 문체가 비슷한 것은 당연한 사실. A씨는 "네"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고, 이 답변은 마치 혐의를 시인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객관적 증거 없이 주관적 인상과 과거 전과가 그의 발목을 잡은 형국이다.
"의심만으로 처벌? '증거재판주의'는 어디에"
법조 전문가들은 A씨의 상황에 대해 '유죄 입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 형사소송법이 정한 '증거재판주의'라는 대원칙 때문이다. 이는 범죄 사실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는 원칙으로, 모든 의심은 피고인의 이익으로 돌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김경태 변호사는 "단순히 문체가 유사하다는 점이나 과거 전과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현재의 게시물이 A씨의 소행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범죄 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은 전적으로 검사에게 있다"고 선을 그었다. 윤관열 변호사 역시 "문체 유사성만으로 처벌이 이뤄지기는 매우 어렵다"며 "피의자가 해당 게시물을 작성했다는 명확한 증거를 수사기관이 제시하지 못하면 처벌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IP도 없는데…'무죄' 입증할 생존 전략은
그렇다면 A씨는 어떻게 억울함을 벗을 수 있을까. 변호사들은 '일관된 진술'과 '객관적 증거 확보'를 핵심 전략으로 꼽았다. 윤관열 변호사는 "본인의 결백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문체 유사성은 제3자가 이전 사건의 게시물을 복사해 올렸기 때문'이라는 점을 명확히 진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문제의 글이 게시된 시간대에 자신의 행적을 증명할 알리바이(현장부재증명)를 확보하고, 제3자가 과거 글을 도용한 다른 사례들을 수집해 제출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시됐다.
조기현 변호사는 "동종 범죄 전력이 있어 혐의가 인정될 경우 가중 처벌될 수 있다"며 "사건 초기부터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법리적으로 무혐의를 주장하며 불송치나 불기소 처분을 이끌어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결국 이 사건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법언이 21세기 디지털 환경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해당 원칙은 단순히 낡은 법률 격언에 그치지 않는다. 데이터 복제와 도용이 손쉬워진 디지털 시대에, 주관적 인상만으로 개인을 처벌하려는 시도를 막는 핵심적인 '방화벽'이다.
이번 사건의 결론은 디지털 흔적을 둘러싼 새로운 유형의 범죄 앞에서 우리 사법 시스템이 시민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