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통장 속 1900만원, 장례비 썼다간 '횡령죄'?
아버지 통장 속 1900만원, 장례비 썼다간 '횡령죄'?
연락 끊긴 상속인 몰래 인출…변호사들 “원칙은 범죄, 예외는 있다”

상속 예금을 다른 상속인 동의 없이 장례비로 인출하면 횡령죄가 될 수 있으나, 합리적 범위의 장례비는 예외로 인정된다. / AI 생성 이미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남긴 예금 1900만 원. 당장 장례비 700만 원을 치러야 하는데, 연락이 끊긴 언니의 동의 없이 이 돈을 써도 될까?
자칫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한 딸의 사연에 법률 전문가들이 명쾌한 해법을 내놨다. 핵심은 '다른 상속인의 동의'와 '장례비라는 특수성' 사이의 아슬아슬한 법리 다툼에 있다.
"내 아버지 돈인데"…동의 없는 인출, 쇠고랑 찰 수도
법률 전문가들은 다른 상속인의 동의 없이 고인의 예금을 인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범죄가 될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경고했다. 아버지가 사망하는 순간 예금은 상속인들, 즉 두 자매의 공동 재산이 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정향의 오주하 변호사는 "망인의 예금카드를 다른 공동상속인(언니)의 동의 없이 장례비용으로 사용하는 경우 형사상 범죄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언니가 문제를 삼을 경우 "의뢰인분이 예금카드 사용행위가 범죄행위가 되지 않음을 적극적으로 소명하고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심의 심규덕 변호사 역시 "공동상속인의 동의 없는 예금 사용은 횡령죄 등 형사책임의 위험이 있습니다"라며 법적 리스크를 명확히 했다.
법원이 인정한 단 하나의 예외, '합리적 장례비'
하지만 모든 인출이 범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법과 판례는 '장례비'를 특수한 경우로 본다.
김경태 법률사무소의 김경태 변호사는 "법적으로 상속인이 망인의 예금을 무단으로 인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장례비는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특수한 경우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민법은 장례비를 상속재산에서 우선적으로 지출할 수 있는 '상속에 관한 비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따라서 장례에 필요한 적정 범위 내의 비용이라면, 망인의 예금에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라고 밝혔다.
판례 역시 합리적인 수준의 장례비 지출은 상속재산의 부당한 처분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혹시 모를 '빚 상속'…잘못된 인출이 '단순승인' 부른다
고인에게 재산보다 빚이 많을 경우를 대비한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를 고려한다면 예금 사용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상속재산을 함부로 처분하면 모든 빚을 떠안는 '단순승인'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유한) 한별의 김용대 변호사는 "혹시 망인이 사망 당시 채무초과 상태로서 한정승인 등을 고려하고 있는 건가요?"라고 물으며, 이 경우 신용카드 사용은 절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도하의 김형준 변호사는 "가급적이면 예금인출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자금을 마련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리고, 만약 다른 방법이 없다면 인출 시 통장에 장례비 명목임을 표시하시고, 관련 증빙서류들을 잘 모아두시기 바랍니다"라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의 최종 공통 조언: "동의 받고, 증빙 남겨라"
결론적으로 전문가들은 분쟁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동의'와 '증빙'을 꼽았다.
법률사무소 유(唯)의 박성현 변호사는 "사용 전에 언니에게 연락하여 동의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의를 받았다면 문자나 통화 녹음으로 이를 증명할 수 있도록 하세요"라고 조언했다.
법률사무소 새양재의 홍현기 변호사는 이와 함께 "사용 내역도 증빙할 수 있는 증빙자료를 남겨 놓으셔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장례비 70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1200만 원은 명백한 공동상속재산이므로, 언니와의 협의 없이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를 여읜 슬픔이 법적 분쟁으로 번지지 않으려면, 투명한 절차와 명확한 증거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