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접촉사고, '전치 2주' 진단서에 꼼짝 없이 뺑소니범 되나
나도 모르는 접촉사고, '전치 2주' 진단서에 꼼짝 없이 뺑소니범 되나
법조계 “상해·도주 고의성 입증이 관건…검찰 기소 전 ‘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A씨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발생한 접촉사고로 한순간에 ‘뺑소니범’이 될 위기에 처했다./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전치 2주 진단서와 '뺑소니' 혐의, 사고 몰랐다면 무죄 가능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발생한 접촉사고로 한순간에 ‘뺑소니범’이 될 위기에 처한 운전자 A씨. 그는 최근 도주치상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소스라 치게 놀랬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A씨는 운전 중 택시와 가벼운 접촉사고를 냈지만, 충격이 미미해 사고 발생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며칠 뒤 경찰로부터 자신이 도주치상 혐의를 받는 피의자라는 연락을 받았다. 피해자인 택시기사는 전치 2주 진단서를 제출한 상태였다.
A씨는 “수사관이 출석 전부터 나를 가해자로 단정했고, 방어권을 행사할 기회도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스치듯 지나간 사고가 한 사람을 흉악범으로 몰아가는 현실 속, A씨는 과연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전치 2주 진단서, ‘상해’의 절대 증거일까?
사건의 첫 번째 쟁점은 피해자가 제출한 ‘전치 2주 진단서’가 법적으로 ‘상해’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도주치상죄(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다쳤다는 사실, 즉 상해가 입증되어야 한다. 하지만 법원은 진단서의 주수(週數)만으로 상해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서아람 변호사는 “대법원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경미하고 특별한 치료 없이 자연 치유될 수 있는 상처는 형법상 상해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이라며 “단순히 통증을 호소해 발급된 전치 2주 진단서만으로는 상해의 증명력이 부족하다고 다툴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피해자가 별다른 치료 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면, 이는 A씨에게 유리한 정황이 된다.
사고 몰랐는데 ‘도주의 고의’…법원은 어떻게 보나
두 번째 쟁점은 A씨에게 ‘도주의 고의’가 있었는지다. 뺑소니는 사고를 내고도 피해자 구호 조치 없이 고의로 현장을 떠나는 행위다. 만약 A씨의 주장처럼 사고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면, 도망치려는 고의 또한 성립할 수 없다.
이진훈 변호사는 “도주치상죄는 사고 인식 가능성과 도주의 고의, 상해 발생이 모두 입증되어야 한다”며 “블랙박스 영상, 차량 파손 정도, 당시 충격과 소음, 사고 후 A씨의 자연스러운 행동 등을 종합해 사고를 인식하지 못했음을 적극적으로 소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압적으로 작성된 경찰 조서는 법정에서 내용을 부인할 경우 증거로 쓰일 수 없다는 점(형사소송법 제312조)도 A씨가 활용할 수 있는 방어 카드다.
기소되면 늦는다…무죄 다툴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
법률 전문가들은 A씨 사건의 성패가 ‘검찰 단계’ 대응에 달렸다고 입을 모은다.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 전, 지금이 바로 ‘골든타임’이라는 것이다.
김동훈 변호사는 “변호인 의견서는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 전인 현 단계에서 제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며 “일단 기소가 되면 재판을 통해 무죄를 입증해야 하므로 시간과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의견서에는 ‘상해 불성립’과 ‘도주의 고의 부재’를 법리와 판례에 근거해 명확히 주장하고, 경찰 조사의 부당함까지 지적해야 한다. 검사가 이를 타당하다고 판단하면 불기소 처분을 내리거나, 최소한 혐의를 단순 사고후미조치로 변경해 사건을 가볍게 마무리할 수 있다.
유죄 확정 전 ‘면허정지 4년’…이대로 속수무책?
A씨를 더욱 황당하게 만든 것은 형사 처벌이 확정되기도 전에 내려진 ‘운전면허 정지 4년’이라는 행정처분이다. 하지만 이 역시 다툴 방법이 있다.
이재성 변호사는 “운전면허 정지 처분은 형사절차와 별개로 진행되지만, 처분에 불복할 경우 90일 이내에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형사사건에서 무혐의나 무죄 처분을 받는다면, 이를 근거로 행정처분을 취소시킬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결국 모든 문제의 열쇠는 검찰 단계에서 도주치상 혐의를 벗는 것에 달려있다. 법의 문턱을 넘기 위한 A씨의 외로운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