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합의금 요구했다 '공갈범' 될라
성범죄 합의금 요구했다 '공갈범' 될라
섣부른 '셀프 합의',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지름길

성폭력 피해자가 고소 대신 합의를 시도하다 공갈범으로 몰릴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 AI 생성 이미지
성폭력 피해 후 고소 대신 합의금을 받으려다 자칫 '공갈범'으로 몰릴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왔다.
가해자와의 대면을 피하려 지인을 동원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며, 2차 피해 없이 안전한 배상을 원한다면 반드시 변호사를 통해야 한다는 조언이 잇따르고 있다.
"가해자 얼굴 보기 싫어요"…지인의 선의가 부를 참극
성폭행 피해를 본 A씨. 가해자가 범행을 인정했지만, 수치심과 트라우마로 고소 절차를 밟기는 망설여진다. 가해자와 마주치지 않고 합의금만 받고 싶어 제3자를 통한 합의를 고민하지만, 이는 피해자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리는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동찬 더프렌즈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일반 제3자를 통한 합의를 진행할 경우 자칫 협박죄나 공갈죄가 성립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며 "법률대리인인 변호사를 통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합의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안전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김경태 변호사 역시 "다행히 가해자가 범행을 인정하는 증거가 있다는 점은 법적 대응에 매우 유리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제3자를 통한 합의금 요구는 자칫 공갈죄나 협박죄로 오해받을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라며 유리한 상황일수록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법적으로 권한 없는 일반인이 합의에 개입하는 순간, 정당한 피해 회복 요구가 '공갈'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희범 라미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성범죄 합의 과정에서 제3자에게 이를 알리게 된다면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고소 전? 후?…합의금 '골든타임'은 언제일까
그렇다면 합의는 언제, 어떻게 시도해야 할까? 임승빈 법률사무소 명중 변호사는 "고소장 접수를 하지 않고 상대방과 합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고소 전 합의' 시도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민경철 법무법인 이엘 변호사는 "피해자가 먼저 고소 전 합의를 제안하면 합의금 목적의 꽃뱀으로 오해를 받을 여지가 큽니다"라고 경고했다.
그에 따르면, 아쉬운 쪽이 피해자가 되어 낮은 합의금을 제안받거나, 합의가 결렬된 후 고소했을 때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져 불리해질 위험이 크다. 이 때문에 '고소 후 합의'가 더 유리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준성 법무법인 공명 변호사는 "형사고소 이후 상대방의 혐의가 입증이 어느정도 된 상황에서 합의를 진행하면 합의금을 상향할 수 있습니다"라며 고소를 통해 가해자를 압박하며 합의를 이끌어내는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안전한 합의를 위한 '필수 조건'…변호사가 필요한 이유
어떤 시점에 합의를 하든, 2차 피해 없이 온전히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명확하다. 바로 '법률 전문가를 통한 체계적인 진행'이다.
우선 가해자의 자백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김민정 법무법인 온조 변호사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하셨는데, 가해자가 '성추행'에 대해서는 인정하였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형법상 성폭행은 성추행과는 다른 범죄입니다"라며 "합의에서는 가해자가 범행을 일부만 인정한 것인지, 전부 인정한 것인지도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라고 지적했다.
합의서 작성 또한 중요하다. 김지진 법무법인 리버티 변호사는 "구체적으로 합의서류를 신속하게 작성하셔야 하고, 추후 불이익 등 피해자에게 어떠한 2차 가해도 없도록 모든 부분에서 분명한 문구가 필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감정적 대응이나 섣부른 자가진단이 아닌, 변호사의 조력을 통해 증거를 확보하고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합의를 진행하는 것만이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진정한 회복에 이르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