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사고 공무원의 딜레마…'기소유예' 멍에, 헌법소원 갈까 징계 감수할까
눈길 사고 공무원의 딜레마…'기소유예' 멍에, 헌법소원 갈까 징계 감수할까
폭설 속 불가항력 사고 주장에도 '범죄 혐의' 꼬리표…징계 앞두고 법조계 자문, 변호사들 '실익'과 '명예' 사이 조언 엇갈려

폭설 속 교통사고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공무원이 징계 위기에 놓이자, 헌법소원을 검토하고 있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미끄러졌을 뿐인데 범죄자라니"…눈길 사고 공무원, '기소유예' 취소 헌법소원 '고심'
지난 겨울에 일어난 이야기다. 폭설이 내린 출근길, 눈길 교통사고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한 공무원이 징계와 명예 회복의 갈림길에 섰다. 지난 1월, 내리막길에서 제동을 걸던 그의 차가 눈길에 통제력을 잃고 중앙선을 넘었고, 결국 교통사고로 이어졌다.
검찰은 그에게 '기소유예'(범죄 혐의는 인정되지만, 재판에는 넘기지 않는 처분)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이 선처는 그의 발목을 잡는 '주홍글씨'가 되어 돌아왔다.
'불가항력' 주장과 '혐의 인정' 처분…대법원 판례는 그의 편일까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는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고의로 중앙선을 넘은 것이 아니라 눈길에 미끄러진 불가항력이었다"고 항변한다. 사고 직후 상대 운전자는 오히려 그를 위로하며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 대화는 녹음 파일로도 남아있다.
하지만 '범죄 혐의가 있다'는 기소유예 처분의 전제는 기관에 통보됐고, 그는 내부 징계위원회에 서야 할 처지가 됐다. 감찰팀은 "고의가 아닌 점을 이해하며 큰 징계는 아닐 것"이라 위로했지만, '혐의 있음'이라는 꼬리표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는 스스로 판례를 찾아 나섰다. 대법원이 과거 "눈길 등에 미끄러져 중앙선을 침범한 것은 고의성이 없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판결한 사례(대법원 90도606 판결)를 발견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결정적 법적 근거를 찾은 것이다. 그는 결국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헌법소원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싸워볼 만하다' vs '승소율 낮다'…엇갈린 법조계 시선
그의 사연에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일부 변호사들은 '싸워볼 만하다'는 희망적인 전망을 내놨다. 김일권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가 있기 때문에 헌법소원 청구 소송에서 승산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대다수 변호사는 헌법소원의 높은 문턱을 지적하며 냉정한 현실을 짚었다. 법무법인 반향 유선종 변호사는 "헌법재판소는 검찰의 기소유예가 자의적이거나 현저히 부당할 경우에만 취소한다"며 "일반적인 과실 교통사고로 인한 기소유예를 뒤집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명예냐 실익이냐, 기회비용의 갈림길
결국 선택은 '명예'와 '실익' 사이의 기회비용 문제로 귀결됐다. 예상되는 징계 수위는 승진이나 성과급에 일부 영향은 있지만 심각하지 않은 '주의'나 '경고' 수준. 이 정도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할 것인가, 아니면 시간과 비용, 스트레스를 감수하며 명예 회복을 위한 힘든 싸움을 시작할 것인가의 문제다.
김경태 변호사는 "예상 징계 수준이 경미하다면 헌법소원 진행에 따르는 실익이 크지 않을 수 있다"며 "징계 절차에서 사고의 불가피성을 잘 소명해 최소한의 징계로 마무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조언했다.
한순간의 사고로 '잠재적 범죄자'라는 멍에를 짊어진 공무원. 그의 딜레마는 범죄 혐의는 인정하되 선처하는 '기소유예' 제도가 특정 신분의 개인에게 어떻게 또 다른 족쇄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