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진 괜찮지?" 스킨십 직후 녹음, 강제추행 뒤집나
"아직까진 괜찮지?" 스킨십 직후 녹음, 강제추행 뒤집나
직장 후배 강제추행 고소, '사후 동의' 녹취의 증거가치는?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남성이 신체접촉 직후 상대의 동의를 확인하는 대화를 녹음했다. / AI 생성 이미지
직장 후배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고소당한 남성이 "스킨십 괜찮냐"고 물은 직후의 대화를 녹음했다며 법적 가치를 물었다.
이 '사후 동의' 녹취가 혐의를 뒤집는 '스모킹 건'이 될 수 있을지 법조계의 분석이 뜨겁다. 전문가들은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지만, 섣부른 제출은 금물이라고 경고한다.
"괜찮은거지?"…결정적 순간, 그의 녹음기는 켜져 있었다
직장 후배 A씨와 이성적인 교류를 이어오다가 관계가 틀어진 B씨. 얼마 뒤 그는 A씨로부터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B씨의 손에는 마지막 신체 접촉 직후 몰래 녹음한 파일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가 공개한 녹음 내용의 일부는 이러했다. "혹시 나중에 스킨십 이런 거 불편하면 적극적으로 말해줘. 난 조심하면 되니까. 아직까진 괜찮은 거지?"
B씨의 물음에 A씨는 고개를 끄덕였고, B씨는 "고맙습니다"라고 답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대화와 웃음소리가 4번 이상 이어졌다고 한다.
B씨는 이 녹음 파일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을지, 또 이전에 있었던 다른 혐의까지 벗겨줄 수 있을지 애타게 묻고 있다.
'사후 동의' 녹음의 법적 가치, "핵심 정황증거" vs "직접증거는 아냐"
법률 전문가들은 B씨가 확보한 녹음 파일이 법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박성현 변호사(법률사무소 유)는 "고소인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고 당시의 강제성이 없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핵심 정황증거"라고 평가했다.
김진우 변호사(법무법인 차원) 역시 "스킨십 직후 확보한 녹취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할 핵심 정황"이라며 "직후의 우호적인 카톡과 대화 분위기를 함께 제시한다면, 재판부는 가해자의 억지 주장보다 귀하의 녹취록에 훨씬 큰 무게를 둘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김태안 변호사(법무법인 KB)는 "동의 장면 자체가 녹음되지 않았고, 상대의 고개 끄덕임도 음성으로 남지 않았다면 '명시적 동의 녹음'이 아니라 '사후 반응 정황'으로 보는 것이 안전하다"고 선을 그었다.
즉, 무죄를 직접 증명하는 '직접증거'가 아닌, 당시 분위기나 상대방의 반응을 보여주는 '정황증거'로서의 가치를 갖는다는 분석이다.
"소급 적용은 안 돼"… 일주일 새 벌어진 이전 혐의, 뒤집을 수 있나?
B씨가 가장 궁금해하는 지점은 이 녹음이 마지막 혐의뿐 아니라 그 이전에 발생한 다른 혐의들까지 무력화시킬 수 있느냐이다. 이에 대해 변호사들은 법리적으로 '소급 적용'은 어렵다고 단언한다.
조가연 변호사(법률사무소 조율)는 "마지막 접촉 당시 별다른 불쾌감 표시가 없었다는 사정이, 곧바로 이전 행위들까지 모두 적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라며 "법원은 각 혐의 사실을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성현 변호사는 "각 혐의점의 날짜 간격이 일주일 이내로 매우 짧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마지막 행위 직후에 불쾌감이 없었다는 정황은 그 이전 행위들 역시 강제추행이 아닌, 직장 내 이성 교류 과정에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신체접촉이었음을 뒷받침하는 간접증거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전 행위가 정말 불쾌했다면, 불과 며칠 뒤 또 다른 접촉에 순순히 응하고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전문가들 "섣부른 제출은 금물, 진술 신빙성 탄핵이 핵심"
전문가들은 결정적 증거를 손에 쥐었더라도 방심은 금물이라고 경고한다. 상대방이 직장 선후배라는 관계를 들어 '위력에 의한 어쩔 수 없는 동의'였다고 반박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준환 변호사(법률사무소 필승)는 "성범죄는 첫 경찰 조사가 승패를 가른다"면서 "비밀 녹음이 있다고 방심하여 혼자 조사에 임하면, 유도 심문에 말려 진술이 꼬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변호사를 선임해 고소장을 확보하고, 대화 맥락과 전후 카톡을 시간순으로 정밀하게 엮은 변호인 의견서를 첫 조사 전 제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우 변호사는 한발 더 나아가 "상대방은 귀하에게 이 녹음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진술을 할 것"이라며 "첫 경찰 조사에서 이 카드를 언제,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무혐의 승패가 갈린다"고 전략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결국 녹음 파일 하나에 의존하기보다, 이를 바탕으로 상대방 진술의 신빙성 자체를 무너뜨리는 치밀한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