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성추행 CCTV, 대표의 '일주일'은 고의였나
사라진 성추행 CCTV, 대표의 '일주일'은 고의였나
가해자와 친구인 헬스장 대표, 증거인멸과 2차 가해 논란

헬스장 강제추행 사건의 핵심 증거인 CCTV가 가해자 친구인 대표의 고의적 지연으로 삭제됐다. / AI 생성 이미지
헬스장 강제추행 사건의 핵심 증거인 CCTV가 가해자와 친구 사이인 대표의 확인 지연으로 삭제됐다.
피해자에게 고소 취하를 종용하고, 수사관이 말을 지어내 합의를 유도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증거인멸죄 성립 여부와 2차 가해 논란의 중심에 선 대표의 행적을 법률 전문가들과 함께 추적했다.
"지방에 있다" 약속 후, 연기처럼 사라진 증거
헬스장에서 직장 상사에게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 A씨. 사건의 진실을 밝힐 유일한 희망은 CCTV 영상이었지만, 그 희망은 어이없이 좌절됐다.
담당 수사관이 영상 확인 권한을 가진 헬스장 본사 대표에게 확인을 요청하자, 그는 "지방에 있어 1주일 뒤에 확인시켜 주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약속한 일주일 뒤, 영상은 보관 기간 만료로 자동 삭제된 후였다. 핵심 증거가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가해자와의 친분, 거짓말로 이어진 합의 종용
의문은 헬스장 대표와 가해자가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는 점에서 시작됐다. A씨에 따르면, 대표는 이전에도 A씨에게 직접 전화해 고소를 취하하라고 종용한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수사관을 만났는데 CCTV 확보에 실패했고, 기소가 어려우니 합의하라"며 재차 연락해 왔다.
하지만 수사관에게 확인한 결과,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수사관이 하지도 않은 말로 피해자를 압박하고 합의를 유도한 셈이다.
결국 담당 수사관은 A씨에게 대표를 증거인멸죄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고소할 것을 권유했다.
법률가들 "'고의성' 입증이 관건…악의적 정황은 명백"
법률 전문가들은 대표의 형사 처벌 여부가 '고의성' 입증에 달렸다고 분석한다.
이동규 변호사는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대표가 지방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CCTV 저장 기간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수사기관의 정당한 확인 요청을 고의로 지연시켜 영상을 삭제되도록 유도했는가 입니다"라고 말한다.
이어 "대표가 가해자와 사적 친분이 있다는 점, 피해자인 질문자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고소를 취하하라고 종용한 점은 과실이나 지연이 아닌 증거를 인멸하겠다는 미필적 고의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정황 증거가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CCTV 삭제를 용인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가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대표가 수사관을 사칭해 합의를 종용한 행위 자체는 별개의 범죄가 되기 어렵더라도, 강제추행 사건에서는 가해자에게 매우 불리한 증거로 쓰일 수 있다.
박성현 변호사는 "대표가 수사관의 발언을 허위로 지어내 합의를 유도한 행위는 그 자체로 독립된 범죄가 되기는 어렵더라도, 대표의 악의적인 고의성과 수사 방해 정황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가 됩니다"라고 했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강제추행 사건에서 가해자 측이 반성하기는커녕 주변 인맥을 동원해 증거를 은폐하고 2차 가해를 저지르고 있다는 강력한 정황으로 활용되어, 가해자에게 불리한 양형 사유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그는 분석했다.
녹취 없어도 증거될까…'통화기록'과 '문자'의 증명력
A씨는 통화 녹음 파일 없이 통화 기록과 문자 내역만으로 대표의 악의적 행위를 입증할 수 있을지 우려했다.
이에 대해 홍윤석 변호사는 "녹음이 없더라도 의뢰인의 통화기록과 직후 수사관에게 남긴 문자는 사건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신빙성 있는 증거로 인정될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여러 변호사들은 해당 증거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연주 변호사는 "입증은 통화기록과 문자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지만, 그 자체로는 한계가 있습니다"라며 "수사관의 확인 내용, CCTV 보관 정책, 자동 삭제 시점, 대표의 접근 권한과 발언 경위를 함께 묶어야 고의와 위계를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객관적 자료를 통해 정황 증거의 힘을 보강해야 한다는 의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