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20% 제한' 판례 있었다…가짜 신분증 사려다 공범 몰린 10대
'책임 20% 제한' 판례 있었다…가짜 신분증 사려다 공범 몰린 10대
법원 "미성년자, 조직에 이용당한 것"…유사 사건 구제 길 열리나

가짜 신분증을 만들려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자금 세탁책으로 전락한 미성년자가 거액의 민사소송을 당했다. / AI 생성 이미지
가짜 신분증을 구하려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자금 세탁책으로 전락한 미성년자. 거액의 민사소송 피고가 된 그에게 법원이 책임을 20%로 대폭 제한한 실제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범죄라는 인식조차 없었던 소년의 억울함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구제받을 수 있을지, 이번 판례가 유사 사건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신분증 값 20만원 보냈는데"…어느 날 '공범'이 되다
사건은 한 미성년 남학생이 인터넷을 통해 '가짜 신분증' 제작을 의뢰하며 시작됐다. 제작비 20만 원을 선입금했지만, 돌아온 것은 신분증이 아닌 사기꾼의 지시였다.
사기 조직은 '보험비', '결제 절차' 등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남학생의 계좌로 들어온 돈을 다른 계좌로 옮기라고 시켰다. 신분증을 받겠다는 일념뿐이었던 남학생은 이것이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심부름을 반복했다.
그 결과, 그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로부터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당하는 피고가 되었다.
쟁점은 '5만원'…'범죄 대가'인가 '유인용 미끼'인가
법정 다툼의 뜨거운 감자는 사기꾼이 남학생에게 '용돈' 명목으로 건넨 5만 원이다. 이 돈의 성격에 따라 유무죄의 향방이 갈릴 수 있다.
법률사무소 반석 최이선 변호사는 "사기꾼이 준 5만 원은 범죄 가담의 대가가 아니라, 이미 20만 원을 편취당한 학생을 안심시키고 계속 부려먹기 위한 '유인책'이었음을 대화 내용을 통해 입증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JY법률사무소 이재용 변호사 역시 "'언제 신분증을 주느냐'고 재촉한 정황은 범죄 자각이 없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라며 대화 내용의 중요성을 짚었다. 결국 '대가'가 아닌 '기망의 수단'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 관건이다.
법원, 미성년자 책임 20%로 제한…"조직에 이용당한 것"
이처럼 억울한 상황에 놓인 미성년자에게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실제 유사 사건에서 법원은 미성년자의 책임을 대폭 제한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한 판결(2023나34885)에서 "피고는 미성년자로서 전화금융사기를 방조한다는 인식 없이 그 조직원에 의하여 이용당한 것에 불과하고, 그 범죄수익 자체를 이득한 바도 없다"고 판시하며 책임을 20%로 제한했다.
이는 민법 제753조가 '행위의 책임을 변호할 지능이 없는' 미성년자의 배상책임을 면제하는 규정과도 맥을 같이한다.
남학생이 미성년이라는 점과 정신과 약물 복용으로 인한 인지력 저하를 입증한다면, 이 판례는 책임 범위를 줄이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민사 넘어 형사처벌 위기…'전략적 자수'는 양날의 검
민사 소송은 시작일 뿐, 사기방조 등 형사 처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민사 소송이 제기된 만큼 형사 고소는 시간 문제라고 본다.
솔루젠 법률사무소의 송승환 변호사는 "형사가 무죄 나와야 민사에서 송금한 금액 전체를 토해내는 결과를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며 형사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응책으로 거론되는 '전략적 자수'를 두고는 의견이 갈린다. 법무법인대한중앙 조기현 변호사는 "경찰로부터 연락이 오기 전에 복수의 변호사와 상담을 진행해보신 뒤, 적절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변호사 동행 하에 자수를 하여 자수감경의 혜택을 도모하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라고 조언했다.
반면 법무법인 창세 김정묵 변호사는 "섣불리 자수했다가 오히려 불리한 진술 구조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건 신중하게 접근하셔야 합니다"라며 신중론을 폈다.
섣부른 행동보다 증거를 완벽히 갖춘 후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