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서 받은 사진 한 장, 나를 '성범죄자'로 만들까?
채팅서 받은 사진 한 장, 나를 '성범죄자'로 만들까?
무심코 저장한 사진이 '도용된 불법촬영물'일 때, 법은 누구의 편에 설까. 전문가들이 말하는 처벌의 핵심 조건과 생존법.

채팅 앱에서 받은 사진이 도용된 불법촬영물이라도 모르고 저장했다면, 형사 처벌의 원칙인 '고의성'이 없어 처벌 가능성은 매우 낮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채팅 앱에서 받은 사진 한 장을 무심코 저장했다. 상대방이 '이게 나야'라며 보내준 셀카였다.
하지만 며칠 뒤, 그 사진이 온라인에 떠도는 도용 사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스마트폰 갤러리에 저장된 이 사진 한 장이, 나를 '디지털 성범죄자'로 만들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법률 전문가들은 처벌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입을 모은다. 형사 처벌의 대원칙은 '고의 없는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이기 때문이다.
속았을 뿐인데 범죄자?…형사처벌 제1원칙 '고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은 불법촬영물을 소지·구입·저장 또는 시청한 자를 처벌한다. 하지만 이는 해당 촬영물이 불법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소지했을 때, 즉 고의가 있을 때만 성립한다.
이재성 변호사(법률사무소 장우)는 "상대방이 자신인 것처럼 속여 사진을 보냈고, 받은 사람 역시 그렇게 믿었다면 불법촬영물을 소지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성폭법 위반의 주관적 구성요건 요소인 고의가 없어 처벌되지 않을 것"이라고 명확히 했다. 김경태 변호사 역시 "불법촬영물을 소지한다는 인식이나 의도가 없었으므로 처벌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분석했다.
만약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게 되더라도, 상대방과의 대화 내용을 증거로 제출하면 충분히 혐의를 벗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김전수 변호사(법무법인 한별)는 "상대방과의 대화 내용을 제출한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변호사들은 '증거 확보'와 '즉시 삭제'라는 두 가지 행동 강령을 제시했다.
사진은 '즉시 삭제', 대화는 '증거 확보'…생존의 철칙
하진규 변호사(법률사무소 파운더스)는 "상대방과 대화한 내역 등을 확보해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해당 사진을 받게 된 경위를 입증해 '고의'가 없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그 사진이 타인의 사진을 도용한 불법촬영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시점부터는 즉시 삭제해야 한다. 계속 보관할 경우, '미필적 고의(어떤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알면서도 이를 용인하는 심리 상태)'에 의한 소지죄가 성립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오지영 변호사(법무법인 명륜)는 "사후에라도 해당 사진이 불법촬영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계속 보관하는 경우에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즉시 삭제하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경고했다.
이번 사례는 '불법촬영물'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다는 점도 시사한다. 흔히 '몰카'만 불법촬영물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법적 정의는 그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동의한 촬영도 유포하면 '불법'…돌변하는 디지털 증거
성폭력처벌법 제14조에 따르면, 촬영 당시에는 동의했더라도 사후에 그 의사에 반하여 유포했다면 명백한 불법촬영물에 해당한다. 연인 사이에 동의 하에 찍은 사진이라도 어느 한쪽이 무단으로 유포하면 그 순간 불법촬영물로 돌변하고, 이를 다운로드받아 저장하는 행위는 소지죄로 처벌될 수 있는 것이다.
강성민 변호사(법무법인 필)는 "동의 후 촬영한 사진이라 하더라도 배포하는 경우에는 배포와 관련하여 처벌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 의도와 무관하게 범죄에 연루될 수 있는 위험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의미다.
결국 이 모든 논란은 '현실적 공포'와 '복잡한 법적 경계'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는 우리 모두의 몸부림이다. 박지영 변호사(법무법인 신의)의 "애초에 불법촬영물 내지 음란한 사진이나 영상을 주고 받지 않는 것이 좋다"는 근본적인 조언은 그래서 더 무겁게 다가온다.
신원이 불분명한 상대와 민감한 사진을 주고받는 행위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