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 썼는데 내가 범인?”…경찰이 IP주소 만으로 날 지목했을 때 대처법
“내가 안 썼는데 내가 범인?”…경찰이 IP주소 만으로 날 지목했을 때 대처법
제주항공 사고 모욕글 작성자로 지목된 시민의 억울한 사연…법률 전문가 14인이 제시한 무죄 입증 전략

IP 주소만으로 악성 댓글 작성자로 지목되는 '디지털 누명'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그 글, 내가 안 썼다” IP주소만으로 범인 지목…변호인단이 말하는 ‘디지털 누명’ 벗는 법
어느 날 갑자기 경찰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작년 말 발생한 ‘제주항공 사건’의 사망자를 모욕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며, 피의자로 특정됐다는 내용이었다.
수사관은 내가 쓴 글이라며 IP주소와 전화번호를 증거로 댔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이트는 물론, 문제의 게시판(갤러리)에 들어가 본 적조차 없다. 순식간에 악성 댓글 작성자로 몰린 한 시민의 사연은 디지털 시대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악몽의 시작이었다.
“디지털 지문은 나를 가리키는데, 나는 아니다”
사건의 발단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된 모욕적인 글이었다. 경찰은 통신사 조회를 통해 확보한 IP주소와 가입자 정보로 글쓴이를 특정했고, 그 끝에 한 평범한 시민 A씨가 있었다.
A씨는 “해당 사이트를 이용하지만 글을 직접 작성한 적은 없으며, 문제의 갤러리에는 들어가 본 적도 없다”고 항변했다. 경찰이 ‘특정 사진’을 올렸다고 지목했지만, 자신의 휴대전화 어디에도 그런 사진은 없었다.
디지털 증거가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A씨는 자신의 무고를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 막막함에 빠졌다.
“IP주소는 유죄의 낙인이 아니다”…변호사들의 만장일치 조언
A씨의 사연에 법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IP주소만으로는 범죄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형사소송의 대원칙인 ‘입증 책임’은 수사기관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홍대범 변호사는 “공소사실의 입증책임은 수사기관에 있으니, 무죄를 주장해보기 바란다”며 “특히 로그인하지 않고 글을 남기는 경우 IP 주소 역시 변동하므로, 단지 IP가 일치하는 것만으로 작성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점을 주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호 변호사 역시 “IP 번호가 일치한다는 정황만으로 유죄로 평가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선을 그었다. 즉, IP주소가 같다는 것은 수사의 시작일 뿐, 유죄의 확정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신의 ‘디지털 알리바이’를 구축하라”…방어의 첫걸음
변호사들은 억울함을 풀 첫 단추로 ‘알리바이 확보’를 꼽았다. 범죄가 발생한 시각,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는 객관적 증거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 출신 최성현 변호사는 “해당 일시의 본인의 행적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며 “통화기록, 위치정보, CCTV 영상, 카드 사용내역 등이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경태 변호사도 “해당 날짜와 시간대의 알리바이 확보가 필요하다”며 “CCTV 영상, 결제 내역, 통화 기록, 위치 정보 등을 최대한 수집하고, 평소 해당 갤러리에 접속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인터넷 사용 기록도 보관해두면 좋다”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포렌식이라는 양날의 검, 신중히 결정해야”
A씨가 가장 먼저 떠올린 무죄 입증 방법은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디지털 증거 분석)이었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가장 확실한 방법처럼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리라법률사무소 김현중 변호사는 “핸드폰을 임의제출해 포렌식을 요청해보기 바란다”며 적극적인 활용을 제안했다.
하지만 법률 분석 자료에 따르면, 포렌식은 문제의 사진이 없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사생활 노출이나 의도치 않은 다른 정보가 발견될 위험도 크다. 섣부른 임의제출은 향후 위법수집증거 주장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권민정 변호사는 “포렌식을 하고, 그 때 당시 휴대전화를 사용한 적이 있는지 여부를 명확하게 소명해야 한다”며 포렌식이 결백 증명과 동시에 상세한 소명 책임을 동반하는 절차임을 시사했다.
“IP의 함정, 왜 당신의 IP가 배신할 수 있나”
그렇다면 A씨는 왜 범인으로 지목됐을까. 전문가들은 IP주소 특정 방식의 기술적 한계를 지적한다. 우리가 가정에서 쓰는 인터넷 IP는 대부분 ‘유동 IP’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바뀐다. 하나의 IP를 여러 사용자가 나눠 쓸 수도 있고, 와이파이(Wi-Fi) 해킹이나 통신사 장비 오류 가능성도 존재한다.
박성현 변호사는 “해당 IP가 다른 사람에게도 사용될 수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통신사에 문의하여 사건 발생 당시 IP 로그를 확인하고, 해당 IP가 특정 시간에 여러 명의 사용자에게 할당된 적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법원은 통신사가 제공하는 가입자 정보에 기술적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판례(대구지방법원 2022. 7. 20. 선고 2021노2920 판결)도 있다.
“혼자 싸우지 마라”…전문가 조력이 필수적인 이유
결론적으로 법률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디지털 누명’ 사건에 휘말렸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변호사를 찾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디지털 증거의 복잡성, 수사기관의 압박, 법적 절차의 생소함 속에서 개인의 권리를 지키고 체계적으로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초기 대응 단계부터 법률 전문가의 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IP주소 하나로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시대, 법적 방어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