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유예 중 또 성폭행 저지른 가해자가 "자살하겠다" 협박…피해자는 어떡해야?
집행유예 중 또 성폭행 저지른 가해자가 "자살하겠다" 협박…피해자는 어떡해야?
그의 '자살' 협박, 사실은 당신 손에 '버튼'이 있다는 신호...전문가들이 말하는 '골든타임'

집행유예 중 또 성폭행 저지른 가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면 "자살하겠다" 협박한다. 이 경우 피해자는 어떡해야 할까?/셔터스톡
"이대로 신고하면 자살하겠다."
최근 끔찍한 성폭행을 당한 A씨에게 가해자가 보내온 메시지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가해자가 이미 동종 성범죄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상태였다는 점이다.
자신의 범행이 드러나면 가중처벌은 물론, 기존에 유예된 징역형까지 더해져 장기간 수감될 것을 직감한 가해자는 "당장 돈이 없어 합의금을 많이 줄 수 없다"는 동정심 유발과 '자살' 협박을 뒤섞어 A씨를 압박하고 있다.
A씨는 가해자의 이기적인 태도에 분노하면서도, 그의 극단적 선택이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심으려는 압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자살하겠다"는 협박, 처벌 피하려는 '마지막 발악'
법률 전문가들은 가해자의 행동이 처벌을 피하기 위한 '전형적인 압박 수단'이라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 에스엘 이성준 변호사는 "가해자는 성범죄 집행유예 기간 중 동종 범죄를 저질렀으므로, 이번 사건으로 실형이 확정될 경우 기존에 유예되었던 형까지 모두 복역해야 하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집행유예 기간 중 고의로 저지른 범죄로 금고 이상의 실형이 확정되면, 기존 집행유예 선고는 효력을 잃는다(집행유예 실효). 즉, 가해자는 합의가 없으면 실형을 피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모두로 법률사무소 한대섭 변호사는 "'자살하겠다'는 말은 피해자의 죄책감을 자극하여 불리한 조건에 합의하게 만들려는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자 협박"이라며 "모든 책임은 집행유예 기간에 또다시 강간을 저지른 가해자 본인에게 있다"고 선을 그었다.
'돈이 없다'는 주장 역시 수년간의 징역형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든 합의금을 마련할 것이기에 믿을 필요가 없다고 그는 조언했다.
전문가들의 '골든룰': "무조건 선고소, 후합의"
그렇다면 A씨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다수의 변호사들은 가해자의 페이스에 휘말려 섣불리 고소 전 합의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법무법인 베테랑 이슬기 변호사는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혼자 대응하다 보면 순간적인 두려움이나 동정심 때문에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에 합의해주고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시간이 지난 뒤에야 후회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가장 유리한 전략은 '선고소, 후합의'다. 한대섭 변호사는 "형사 절차가 개시되면 가해자의 압박감은 극에 달하게 되고, 그때 합의를 진행하면 훨씬 더 유리한 조건으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변호사들은 강간 사건의 합의금으로 통상 수천만 원이 거론되며, 재범 등 죄질이 나쁜 경우 7천만 원에서 1억 원을 훌쩍 넘는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가해자의 '돈이 없다'는 말에 속아 헐값에 합의할 이유가 전혀 없는 셈이다.
가해자와의 직접 소통은 '독', 변호사가 '방패막이' 되어야
전문가들은 A씨가 가해자와 직접 소통하는 것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한다. 가해자의 지속적인 연락과 협박은 그 자체로 피해자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2차 가해'이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대청 김희원 변호사는 "가해자의 지속적인 연락 및 협박 부분은 보복 협박으로 추가 고소가 가능하다"며 "상대방의 연락은 차단하고, 향후 변호사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변호사를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하면, 변호사가 피해자를 대신해 가해자와의 모든 소통을 전담한다. 이를 통해 2차 가해를 원천 차단하고, 법적 기준에 맞는 적정한 합의금을 조율하며, 합의가 결렬될 경우 즉각적인 고소 절차를 밟는 등 모든 과정을 피해자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결론적으로 A씨는 가해자의 감정적 협박에 흔들릴 필요가 전혀 없다. 그의 '자살' 협박은 오히려 모든 협상의 주도권, 즉 그의 운명을 결정할 '버튼'이 A씨 손에 쥐어졌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동정심이 아닌, 짓밟힌 존엄을 되찾고 온전한 피해를 회복할 법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