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합의 제안, 덥석 물면 '독배'…법적 함정은?
스토킹 합의 제안, 덥석 물면 '독배'…법적 함정은?
상대방이 먼저 제안해도 직접 연락은 금물…이론과 현실의 차이

스토킹 혐의자가 피해자의 합의 제안에 직접 연락하면 추가 범죄로 간주될 수 있다./ AI 생성 이미지
스토킹 혐의로 검찰 처분을 앞둔 A씨. 경찰의 경고장까지 받은 상황에서 상대방 지인으로부터 “합의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구원의 동아줄처럼 보이지만, 섣불리 직접 연락했다간 기소유예로 끝날 사건이 정식 재판으로 비화될 수 있는 ‘독배’가 될 수 있다. 달콤한 유혹 뒤에 숨은 법적 이론과 실무적 현실의 간극을 심층 취재했다.
“합의 목적이라도 안돼”…변호사들의 만장일치 경고
스토킹 혐의로 고소당한 A씨는 최근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자신을 고소한 상대방이 지인을 통해 합의 의사를 전해온 것이다. 경찰의 사전 경고장까지 받아 접촉이 조심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상대가 먼저 내민 손길에 직접 연락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절대 금물’이라며 한목소리로 경고했다.
핵심은 연락의 ‘목적’이 아닌 ‘행위’ 그 자체다. 법무법인(유한) 한별 허은석 변호사는 “이 사안에서 핵심은 '합의 목적이냐'가 아니라, '접촉 행위가 있었느냐'입니다.”라고 단언했다. 이미 경고를 받은 상태에서의 추가 연락은 검찰에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유한) 한별 김전수 변호사는 “실무상 가장 위험한 지점은, 합의 목적의 단 1회 연락이 사건 기록에 남아 '경고 이후에도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관계로 정리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기존에 불송치나 기소유예 검토 대상이던 사건이 벌금형이나 정식기소로 방향이 바뀌는 사례도 실제로 존재합니다.”라고 실무상의 위험을 설명했다.
이론상 ‘정당한 이유’…법리적 반격의 실마리
하지만 법리적으로만 따지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제공된 법적 분석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는 ‘지속적 또는 반복적’인 행위를 요건으로 하므로 합의를 위한 1회성 연락만으로는 새로운 범죄가 성립하기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먼저 합의를 제안했다는 사실이다.
해당 분석은 “상대방이 지인을 통해 먼저 '합의를 하자'는 취지의 연락을 전달해 왔다는 점은, A씨의 합의목적 연락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정황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지적한다. 또한 형사사건에서의 합의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서울북부지법은 최근 상대방이 먼저 연락 원인을 제공한 사정 등을 들어 스토킹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2024노2161). 즉, 이론적으로는 상대의 제안에 응한 것이므로 위법하지 않다고 다툴 여지가 있는 셈이다.
“상대방 말 바꾸면 끝”…이론과 현실의 벽
그렇다면 왜 변호사들은 이토록 직접 연락을 만류하는 것일까. 이론과 수사 현실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법률사무소 정승 정우승 변호사는 본인이 직접 상대방에게 연락하는 순간, 상대방이 이를 ‘합의를 빌미로 한 또 다른 압박이나 스토킹’이라고 주장하며 추가 신고를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검찰은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보아 엄벌에 처할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JY법률사무소 이재용 변호사 역시 “만약 연락 과정에서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압박감을 느꼈다고 주장할 경우, 기소유예가 가능했던 사안조차 벌금형이나 정식 기소로 처분이 무거워질 실질적 위험이 있습니다.”라고 정확히 짚었다.
서울종합법무법인 서명기 변호사 또한 “수사기관은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보다, 경고 이후 직접 연락이 있었는지를 형식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라며 수사 실무의 경직성을 지적했다.
유일한 안전 통로는 ‘대리인’…“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아야”
결론적으로, 법률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해법은 ‘대리인을 통한 간접 소통’이다.
법률사무소 제일로 배경민 변호사는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연락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라며, 상대방이 접촉해 온 지인이나 변호사를 통해 합의를 진행할 것을 권했다.
특히 쌍방 고소가 얽힌 복잡한 상황이라면 더욱 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하다. 법률사무소 태희 민경남 변호사는 “변호사가 합의를 위해 연락하는 것은 정당한 변론 활동의 일환이므로 스토킹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A씨가 입은 폭행 및 상해 피해 사실을 적절히 활용하여 스토킹 사건의 처분 수위를 낮추는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조언했다.
억울한 마음에 섣불리 직접 나섰다가는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경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