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구도 안 한 '사진'에 성범죄자 될 판…아청법 '소지죄'의 덫
요구도 안 한 '사진'에 성범죄자 될 판…아청법 '소지죄'의 덫
랜덤채팅서 만난 초등생이 보낸 신체 사진 시청…저장·유포 없어도 '성착취물 소지' 기소, 법조계 갑론을박

나이를 속인 초등학생이 보낸 신체 사진을 본 고등학생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 혐의로 기소됐다./셔터스톡
클릭 한 번에 '성범죄자' 될라…요구 안 한 사진 본 고교생, 아청법 '소지죄' 법정 공방
“딸깍” 한 번에 1년 이상 징역? 나이 속인 초등생이 보낸 사진을 본 고등학생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 혐의로 법정에 섰다. 저장도, 유포도 없었다는 항변 속에서 법조계는 ‘소지’의 범위를 두고 치열한 법리 다툼을 예고했다.
“아들이 성범죄로 기소됐습니다. 상대는 나이를 속인 초등학생이었고, 사진을 보내달라 요구한 적도 없습니다.” 한 아버지의 절박한 호소가 법률 상담 게시판에 올라왔다.
2023년 당시 고3이던 아들이 랜덤채팅 앱에서 만난 상대와 대화를 나누다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는 것이다. 상대는 자신을 중2라고 소개했지만, 실제 나이는 초등학생이었다.
두 사람은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대화를 이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녀는 요구하지도 않은 자신의 주요 신체 부위 사진 6장을 보내왔다. 아들은 사진을 본 당일 메시지를 모두 삭제했고, 따로 저장하거나 다른 곳에 옮기지 않았다.
하지만 소녀의 부모가 제3자와의 성관계 사실을 알고 딸의 휴대전화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아들의 존재가 드러났고, 경찰은 아들을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죄(아청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저장 안 했는데 ‘소지’라고?”…엇갈리는 변호사들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았고, 별도 저장 없이 즉시 삭제했으며, 상대방이 먼저 접근해 나이까지 속인 점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황입니다.” 김경태 변호사는 무죄를 다퉈볼 만한 지점들을 짚었다.
핵심 쟁점은 ‘소지’의 개념이다. 아청법 제11조 5항은 성착취물임을 알면서 ‘소지·시청’한 자를 1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김전수 변호사는 “다운로드하지 않았다면 소지로 보기가 어려울 수 있다”며 “공소장과 사건기록을 구체적으로 검토 후 무죄주장 여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상훈 변호사 역시 “단순히 음란 대화를 나눴다고 해서 이후 당연히 음란 사진이 공유될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며 “결과적으로 사진이 아동 음란물이라 하더라도, 제3자의 느닷없는 사진 발송으로 시청하게 된 경우까지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법리 다툼을 예고했다.
범죄의 ‘고의성’이 있었는지도 관건이다. 법무법인 공명의 김준성 변호사는 “성착취물 관련 범죄로 처벌받기 위해서는 상대 여성이 아동, 청소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행위를 했어야 한다”며 확정적인 범죄의 고의가 없었음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음란 대화 자체가 덫”…신중론 내세운 검사 출신들
반면, 검사 출신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법무법인 명륜의 오지영 변호사는 “음란 대화를 주고받은 정황, 인스타그램으로 대화 수단을 옮긴 점은 성착취물을 인지하고 시청할 의사가 있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어 완전한 무죄를 주장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사 출신인 정다미 변호사 역시 “사진을 달라고 명확히 요구한 게 아니라 하더라도 전후 상황의 해석에 따라 성착취물 소지로 처벌받을 수 있다”며 기록 검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서아람 변호사(전 검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섣불리 무죄를 주장하거나 상대방을 맞고소하는 것은 양형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니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검찰이 조사 없이 바로 기소(구공판)한 것은 그만큼 혐의 입증에 자신이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부친이 모르고 있는 증거관계나 관련자들 진술이 증거로 제출되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상대방 맞고소?”…변호사들 “오히려 독” 한목소리
아버지의 또 다른 질문은 ‘나이를 속이고 사진을 보낸 상대를 맞고소할 수 있는가’였다. 이에 대해 상담에 참여한 거의 모든 변호사가 “절대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김경태 변호사는 “상대방이 미성년자이고 이미 수사가 진행된 사안에서 새로운 고소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이러한 정황들을 현재 재판에서 감경 사유로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명중의 윤형진 변호사는 “상대방이 형사미성년자(만 14세 미만)인 경우 형사처벌은 어렵고, 소년원 등 보호처분만 가능하다”고 현실적인 한계를 짚었다. 맞고소가 재판부에게 ‘반성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줘 아들의 재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지배적이었다.
결국 변호사들의 조언은 한 방향으로 모였다. 섣부른 맞고소 대신, 사진을 요구하지 않았고 저장·유포하지 않은 점, 피의자 역시 사건 당시 미성년자였던 점 등을 적극적으로 주장해 법원의 선처를 구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