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범에 '걸레 입' 댓글, 맞고소…유령계정도 피해자 될까?
성희롱범에 '걸레 입' 댓글, 맞고소…유령계정도 피해자 될까?
통매음 유죄 받은 가해자의 반격, 법조계 "피해자 특정'이 관건"

온라인 성희롱범의 계정이 익명의 '유령 계정'이라면, 모욕죄로 맞고소당해도 피해자 특정성이 부정될 가능성이 높다./ AI 생성 이미지
온라인 성희롱범에게 '사회적 불순물' 등 댓글을 달았다가 모욕죄로 맞고소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 계정은 프로필이나 게시물이 하나도 없는 '유령 계정'인데, 과연 모욕죄가 성립할까?
법률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누구인지 제3자가 알 수 없는 경우 '특정성'이 부정될 가능성이 높으며, 입증 책임도 고소인에게 있다고 분석했다.
성희롱범 응징했더니...황당한 '모욕죄 맞고소'
사건은 한 인스타그램 이용자 A씨가 익명의 가계정으로부터 성적 욕설과 패드립(패륜적 농담)을 당하면서 시작됐다.
A씨는 가해자를 통신매체이용음란죄(통매음)와 모욕죄로 고소했고, 법원은 가해자에게 벌금 200만 원의 구약식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정의가 실현됐다고 안도한 것도 잠시, A씨는 가해자로부터 모욕죄로 맞고소를 당하며 순식간에 피의자 신세가 됐다. 가해자가 문제 삼은 것은 A씨가 남긴 '사회적 불순물', '걸레물은 입' 등의 분노가 담긴 답글이었다.
유령계정의 '피해자 자격', 법의 심판대에 오르다
A씨의 가장 큰 고민은 상대방이 실체가 없는 '가계정'이라는 점이었다. 이름, 프로필 사진, 게시물 하나 없는 계정도 모욕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을까?
법률 전문가들은 모욕죄가 성립하기 위한 핵심 요건으로 '피해자 특정성'과 '공연성'을 꼽았다.
법무법인 로웰 김훈희 변호사는 "가계정이라는 사실만으로 모욕죄가 무조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상대방이 누구인지 제3자가 전혀 알 수 없는 계정이라면, 모욕죄 성립이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해당 계정이 현실의 특정 인물과 연결된다는 점을 제3자가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명륜 오지영 변호사 역시 "모욕죄는 표현이 실제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특정인의 평가를 저하시킬 때 성립한다"며 "계정만으로는 배후의 실존 인물을 알 수 없다면, 특정성이 부정될 여지가 크다"고 덧붙였다.
팔로워가 5명 있다는 사실 역시, 그들이 계정 주인의 실제 지인이 아니라면 특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거짓말, 누가 증명해야 하나?
A씨는 상대방이 처벌을 위해 '팔로워 중에 나를 아는 지인이 있다'고 거짓말을 할까 봐 우려했다. 그렇다면 팔로워들이 상대방을 모른다는 사실을 A씨가 직접 증명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아니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형사소송의 대원칙상 범죄 혐의에 대한 입증 책임은 고소인과 수사기관에 있기 때문이다.
법률사무소 새율의 윤준기 변호사는 "형사절차에서 입증 책임은 원칙적으로 고소인 측에 있다"며 "A씨가 반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직접 증명할 의무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법무법인 도모 김상훈 변호사 또한 "오히려 상대방이 본인이 해당 계정의 실소유주임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었는지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A씨의 입증 책임 부담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결국 고소인 스스로가 '내 계정이 온라인상에서 나 자신을 가리키는 것임을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었다'는 점을 증명해야만 모욕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의 최종 조언 "방어 여지 충분, 객관적 증거 확보해야"
종합적으로 법률 전문가들은 A씨가 충분히 방어할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상대방 계정이 극도의 익명성을 띠고 있어 '피해자 특정성'과 '공연성'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가계정이니까 무조건 무죄'라고 단정하는 것은 금물이다.
전문가들은 맞고소에 당황하기보다, 상대 계정의 프로필 정보, 게시물 유무, 팔로워 목록 등을 캡처해 익명성을 입증할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해 둘 것을 공통으로 조언했다. 이를 통해 수사 단계에서 상대방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반박하고, 특정성이 결여되었음을 주장해 불송치나 무혐의 처분을 이끌어내는 전략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수훈의 박도민 변호사는 한 발 더 나아가 "정식 고소장이 접수됐다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고소장을 먼저 확인한 후 조사에 임할 필요가 있다"며 철저한 사전 준비를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