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건이 증발했다'…경찰 불송치 이의신청, 깜깜무소식에 피 말리는 시민들
'내 사건이 증발했다'…경찰 불송치 이의신청, 깜깜무소식에 피 말리는 시민들
법은 '지체 없이 송치'를 명하지만, 현실은 수사관 묵묵부답, 검찰은 '접수된 것 없다'. 답답함을 넘어 공포를 느끼는 시민들을 위한 단계별 대처법과 제도의 허점을 법률 전문 기자가 짚어봤다.

A씨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불복해 이의신청서를 낸지 2주가 지났지만, 검찰청 콜센터에서는 "아직 접수된 사건이 없다"는 답변만 반복됐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 내 사건이, 2주 넘게 행방이 묘연한 채 증발해버렸다.
경찰의 '수사 종결' 통보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이의신청서를 낸 A씨. 형사소송법에 따라 자신의 사건이 즉시 검찰로 넘어갈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2주가 넘도록 검찰청 콜센터에서는 "아직 접수된 사건이 없다"는 답변만 기계처럼 반복됐다. A씨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전화하면 귀찮아할까 봐"…수사관 연락이 공포가 된 피해자
사건의 행방을 알 유일한 열쇠는 담당 수사관이 쥐고 있다. 하지만 A씨는 수사관의 번호를 차마 누르지 못했다. 이전 수사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귀찮아하던 수사관의 말투와 태도에 깊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A씨는 한 온라인 상담 게시판에 "수사관에게 전화하는 것 자체가 무섭다"고 토로했다. 이는 단순히 행정 처리가 지연되는 문제를 넘어, 형사 절차에서 개인이 겪는 극심한 심리적 압박과 무력감을 생생히 보여준다.
법전 속 '지체 없이'는 며칠?…"2주 지연은 명백한 이상 신호"
현행 형사소송법 제245조의7은 이의신청이 있으면 경찰은 '지체 없이' 검사에게 사건을 송치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법이 '지체 없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명확하다. 사건이 행정 절차의 미로 속에서 표류하며 당사자에게 2차 피해를 주는 상황을 막기 위함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통상적인 서류 처리 기간을 감안해도 2주 이상 지연은 이례적이라고 지적한다. 경찰 출신 정봉광 변호사는 "경찰 근무 경험상 이의신청 사건은 당일이나 늦어도 다음 날 바로 송치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김경태 변호사 역시 "통상 1~2주 안에 검찰 접수가 확인된다"며 "2주가 넘도록 접수되지 않았다면 행정 처리 지연이나 누락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불통' 수사관 대신 말 통하는 창구는?…전문가들의 3단계 해법
담당 수사관이 소통의 벽을 쌓았을 때, 시민은 어디에 기댈 수 있을까. 변호사들은 다음과 같은 단계별 해법을 제시했다.
1단계: 경찰서 '민원실'을 찾아라.
김경태 변호사는 "민원 담당자들은 수사관보다 비교적 친절하게 응대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건번호를 가지고 송치 여부와 송치 번호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조언했다.
2단계: '상급자'에게 직접 연락하라.
담당 수사관과 소통이 어렵다면, 그의 상급자인 팀장이나 과장에게 직접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고 신속한 처리를 요구할 수 있다. 이는 담당자에게 직접적인 압박이 될 수 있다.
3단계: '청문감사실' 또는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하라.
최후의 수단은 공식적인 문제 제기다. 최성현 변호사는 "경찰서 청문감사실은 경찰관의 직무수행을 감독하는 부서로, 정당한 사유 없는 처리 지연에 대해 시정 조치를 내릴 수 있다"며 "국민신문고를 통한 민원 역시 기록이 남는 강력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8개월 만의 송치, 남의 일이 아니다…반복되는 '깜깜이 행정'
A씨의 사례는 결코 특별한 불운이 아니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이의신청된 사건을 무려 8개월이나 뭉갠 뒤에야 검찰에 송치한 경찰관에게 '시정권고'를 내렸다.
법이 보장한 신속한 절차 진행의 권리가 현장에서 어떻게 무시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다. A씨의 막막함은 법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홀로 고통받는 수많은 시민의 얼굴을 대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