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만원 주며 "사귀자"…잠자리 거절하니 "고소"
2천만원 주며 "사귀자"…잠자리 거절하니 "고소"
호의로 건넨 돈인가, 갚아야 할 빚인가

한 남성이 여성의 빚을 갚아주겠다며 2천만원을 보낸 뒤 교제 및 잠자리를 요구했다. / AI 생성 이미지
"빚 갚아줄게"라며 2천만 원을 보낸 뒤 교제를 요구하던 남성이 잠자리 요구를 거절당하자, "돈을 전부 돌려주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법조계는 연애나 성관계를 조건으로 건넨 돈은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해 반환 청구가 어려울 수 있으며, 사기죄 성립도 힘들다고 분석했다.
"빚 갚아줄게, 나랑 만나자"…돌변한 남자의 '고소 협박'
술집에서 만난 남성에게 호감을 산 A씨. 남성은 A씨에게 적극적으로 연애를 요구했지만, A씨는 빚이 있고 심리적 여유가 없어 연애할 상황이 아니라고 여러 차례 거절했다.
그러자 남성은 A씨의 계좌로 "빚 갚으라"며 2,000만 원을 보낸 뒤 "이제 나와 연애를 하자"고 말했다.
A씨는 그 돈으로 즉시 빚을 갚았다. 이후 남성은 하루에 4번 이상 전화를 하고 "차 마시자", "밥 먹자"며 계속 연락해 왔다. A씨가 일을 해야 했기에 모든 연락과 만남에 응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성은 자신이 예약한 모텔로 오라며 잠자리를 요구했고, A씨가 이를 거절하자 다음 날 돌연 "보낸 돈을 전부 돌려주지 않으면 고소나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협박해왔다. A씨는 "돈을 달라고 하거나 빌려 달라고 한 적도 없고, 갚겠다고 말한 적도 없다"며 법적 대응 방안을 문의했다.
'호의로 준 증여'인가, '갚아야 할 대여금'인가
법률 전문가들은 이 사건의 핵심을 2,000만 원의 법적 성격 규명으로 보았다. 상대방이 민사소송을 제기할 경우, 돈의 성격이 '빌려준 돈(대여금)'인지, '대가 없이 준 돈(증여)'인지에 따라 결론이 완전히 달라진다.
조기현 변호사는 "차용증이 없고 변제기나 이자에 대한 합의도 전혀 없었으며, 상대방이 연애를 제안하며 자발적으로 송금한 점에 비추어 볼 때 해당 금원은 대여가 아닌 증여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김준환 변호사 역시 "이 돈은 상대방이 호감을 얻기 위해 대가 없이 제공한 '증여'에 해당한다"며 "증여는 이미 이행(송금)된 후에는 일방적으로 취소하거나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대여금 소송에서는 돈을 빌려줬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원고, 즉 남성 측이 입증할 책임이 있는데, 단순 송금 내역만으로는 이를 증명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연애·잠자리가 조건? 오히려 불법"…스토킹 역고소 가능성도
일부 변호사들은 남성의 주장이 오히려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대섭 변호사는 "만약 상대방이 성적인 관계나 교제를 조건으로 돈을 주었다고 스스로 주장한다면, 이는 민법 제103조에서 금지하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행위"라며 "불법적인 조건을 결부시킨 금전 지급은 민법 제746조의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여 상대방은 법적으로 반환을 청구할 수 없게 된다"고 분석했다.
즉, 남성이 '잠자리를 조건으로 돈을 줬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 돈은 돌려받을 수 없는 돈이 된다는 의미다.
나아가 조기현 변호사와 한대섭 변호사는 원치 않는 연락을 수차례 지속하고 잠자리를 요구하는 행위, 고소를 빌미로 협박하는 행위 등은 각각 스토킹범죄나 협박죄에 해당할 수 있어 A씨가 오히려 역고소를 검토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조언했다.
전문가들 "섣부른 변제 약속 금물, 모든 대화 기록이 무기"
변호사들은 A씨가 형사상 사기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입을 모았다.
임승빈 변호사는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송금 당시 질문자분의 기망행위와 편취 고의가 입증되어야 한다"고 전제하며, A씨가 먼저 돈을 요구한 정황이 없어 사기죄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대응으로 '증거 확보'와 '섣부른 대응 자제'를 꼽았다. 전종득 변호사는 "'빚이니 갚겠다'는 취지로 답하지 말고, '차용 아님, 조건 합의 없음, 추가 연락 중단 요청'을 문자로 남기라"고 조언했다.
최이선 변호사 역시 "상대방의 유도 심문에 말려들어 '미안하다'거나 '갚겠다'는 취지의 문자를 보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남성과의 모든 대화 기록, 특히 '빚을 갚아 주겠다'며 돈을 보낸 경위와 잠자리 요구 및 협박 내용이 담긴 문자나 통화 녹음이 A씨를 지켜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