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안 납니다"…성범죄 재판서 '독'이 된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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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안 납니다"…성범죄 재판서 '독'이 된 한마디

2026. 04. 16 16:57 작성
최회봉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caleb.c@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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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 후 동료 추행 혐의…'기억상실' 주장의 치명적 함정

만취 상태에서 직장 동료를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이 '기억상실'을 주장하고 있다. / AI 생성 이미지

"잘 해보자"며 마신 술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법정 다툼으로 비화했다. 만취 상태에서 직장 동료를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 A씨. 그의 유일한 항변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이 한마디가 오히려 피고인의 발목을 잡는 '독'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객관적 증거 앞에서 '기억상실'은 반성 없는 태도로 비칠 수 있으며, 섣부른 합의 시도는 '2차 가해'라는 더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가 시작됐다.


"정신 차리니 여직원 옆"…블랙아웃에 갇힌 하룻밤의 진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월 말, A씨가 새로 온 직장 동료와 기숙사 용도로 쓰는 아파트에서 가진 술자리였다. "앞으로 잘 해보자는 의미"로 시작된 식사는 A씨가 필름이 끊길 정도의 과음으로 이어졌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속옷 차림으로 여성 동료 옆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당황한 A씨는 스스로 "상황이 불편하면 경찰에 신고를 해라"고 말했고, 이는 곧 현실이 됐다.


지구대 조사와 DNA 채취까지 이어진 끝에, 그는 여성의 성기와 가슴을 만졌다는 준강제추행 혐의로 법원 출석을 앞두게 됐다.


A씨는 "그 일이 이후로 폐인처럼 술만 마시고 있다"며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기억상실, 반성 없는 태도로 비칠 것"…전문가들의 뼈아픈 경고


A씨의 절박한 호소와는 달리, 법률 전문가들은 '기억상실' 주장의 위험성을 한목소리로 경고한다.


검사 출신인 안창보 변호사(법률사무소 존중)는 A씨가 경찰 조사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변한 것에 대해 "오히려 질문자님에게 독이 된 것 같습니다"라고 진단했다. 기억이 없다는 항변이 법정에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로 비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경남 변호사(법률사무소 태희) 역시 "범행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주장은 수사기관과 법원으로부터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는 태도로 비칠 위험이 크며, 이는 양형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사건 당시 상황에 대한 막연한 부인보다는 확보된 증거 기록을 철저히 분석하여 인정할 부분과 방어할 부분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강조하며, 기억이 아닌 증거에 기반한 치밀한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증거가 명백하다면?…'조건부 항복'도 전략이다


그렇다면 A씨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감정적 호소 대신 냉정한 현실 파악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법원에 '증거기록 열람등사'를 신청해 검찰이 어떤 증거를 확보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홍윤석 변호사(제로변호사)는 이 지점에서 매우 중요한 조건부 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만약 증거기록상 추행 사실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면, 무리하게 부인하기보다는 혐의를 인정하고 상대방과 원만한 합의를 시도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했다.


이는 무조건적인 혐의 인정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DNA 등 반박하기 어려운 증거가 있을 경우를 전제로 한 전략적 선택이다. 증거의 유불리를 따져보고 방어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다.


'합의'라는 마지막 동아줄, 그러나 "직접 연락은 절대 금물"


성범죄 사건에서 처벌 수위를 낮출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열쇠는 '피해자와의 합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합의 시도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준성 변호사(법무법인 공명)는 "성범죄 사건에서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을 하는 것은 2차 가해가 될 수 있어 반드시 변호인을 통해 합의를 시도하여야 합니다"라고 못 박았다.


섣부른 직접 접촉은 사죄의 진정성을 의심받게 할 뿐 아니라, 도리어 협박이나 압박으로 비쳐 더 큰 처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안의 중대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다. 정진열 변호사(법무법인(유한) 엘케이비평산)는 "성범죄는 초범이라도 취업 제한이나 신상정보 공개 같은 부수 처분이 따를 수 있습니다"라며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라고 경고했다.


이제 A씨는 기억나지 않는 과거가 아닌, 눈앞의 냉정한 현실과 마주해야 할 시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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