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일명 카찰죄)'가 적용돼 재판에 넘겨지고, 처벌이 확정된 판결은 총 2209건이다. 로톡뉴스는 이 2209건의 판결문들을 전수 조사했다.
불법촬영 범죄의 특성을 면밀하게 분석하기 위해 기준을 세웠다. 우선, 판결문 2209건 중 강간 등 기타 강력범죄와 불법촬영 범죄가 함께 발생한 765건은 분석 대상에서 배제했다. 강력범죄가 더해진 경우를 분석 대상에 포함할 경우, 법정형이 단순 불법촬영 범죄에 비해 지나치게 높아져 데이터 신뢰도를 저하시키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했다.
1차로 추려낸 1444건의 불법촬영 판결문에서 중복 판결을 한 번 더 걸러냈다. 동일 피고인에 대한 심급별(1·2·3심) 사건은 1건으로 계산하고, 형량 평균 등은 최종심 결과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렇게, 총 1259건의 개별 사건을 도출할 수 있었다.
불법촬영 사건을 다수 수임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의 말대로, 1259개의 판결문 검토 결과 1번만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거의 없었다. 피고인 1명당 불법촬영 횟수는 평균 38번이었다.
불법촬영으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 1259명이 저지른 불법촬영 횟수는 피고인 수의 약 40배인 4만 8503번. 지난해 판결 기준 하루에 약 133건, 1시간에 5.5건. 그리고 약 10분에 한 번, 불법촬영 피해자가 발생했다.
성폭력처벌법상 불법촬영에 대한 법정형은 지난 2018년 이후 상향을 거듭했다. 징역형은 5년에서 7년으로, 벌금형은 1000만원에서 3000만원 그리고 5000만원으로 높아졌다.
이처럼 디지털 성범죄를 강력 처벌하겠다는 기조가 세워졌지만, 로톡뉴스가 분석한 결과 법정형만 높아졌을 뿐 처벌 수위는 여전히 솜방망이 수준이었다. 징역형의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선고된 경우는 약 80%였다. 10명 중 8명은 불법촬영을 저지르고도 우리 곁에 남아있다.
불법촬영 피해자 절대다수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하고도 법적 구제조차 받을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다. 디지털 포렌식을 거쳐 검거 이전에 가해자가 저지른 범행을 추가로 밝혀내기도 하지만, 특정인을 촬영한 게 아닌 한 대다수 피해자는 '신원 미상'으로 남는다. 일부 불법촬영물의 경우 성 착취물 사이트 등에 유통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피해자의 신원이 특정된다고 해도 문제가 된다. 피해자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 가해자는 오히려 유리해진다. 신원이 특정된 불법촬영 피해자는 '합의를 시도'해 형을 낮출 수 있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판결문 분석 결과
① 피해자와 합의를 하거나
② 피해자 중 일부와 합의를 하거나
③ 피해자와 합의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피고인에게는 유리한 양형 사유로 반영됐다.
합의 여부는 처벌 수위를 조금 낮춰주는 정도가 아니라 형종(刑種⋅형의 종류) 자체가 바뀌기도 했다.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될 만큼 중한 사건이 항소심(2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까지 감형된 사례만 55%였다(피고인 120명 중 66명).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가 '합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를 가중처벌 요인으로 꼽고 있지만, 이런 통계 결과를 봤을 때 가해자들 입장에서는 안 할 이유가 없는 행동이었다.
2022년 9월 14일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도 이런 배경에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여자 화장실을 순찰하던 역무원은 전주환(31)이 휘두른 흉기에 사망했다. 피해 역무원은 스토킹과 불법촬영 피해자였다.
전주환은 지난 수년간 피해자를 불법촬영하고 이를 유포시키겠다며 협박해왔다. 그러나 범죄 피해를 구제받기 위해 법의 도움을 구한 피해자에게 돌아온 건 가해자의 끈질긴 합의 종용이었다.
판결문이 보여준 데이터에 따르면 곳곳이 불법촬영 범행 장소였다. 사실상 안전지대는 없었다.
불법촬영은 어디서든 일어났다. 평범한 일상에서조차 우리는 디지털 성범죄 위험에 노출됐다. 이러한 현상은 가해자 유형에서도 확인됐다. 불법촬영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가해자가 지인인 경우와 아닌 경우는 큰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친어머니를 대상으로 불법촬영 범죄를 한 경우도 있었다.
누군가는 불법촬영 원인을 피해자에게서 찾으려 한다.
"그런 장소에 가지 말았어야 한다."
"그런 옷을 입지 말았어야 한다."
"그런 사람과 만난 자체가 문제다."
그러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그런 장소' '그런 옷' '그런 사람'으로만 나눌 수 있는 사건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