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력을 추가로 투입해 범죄 사실을 밝혀야 할 명분이 옅어졌다. 그러니 적당한 수준에서 마무리되는 수사와 기소, 결과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처벌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보편적 정의 관념과 법원의 판결은 점점 동떨어지고 있었다.
두 사건 피고인은 길거리나 식당, 상점 같은 불특정 장소에서 누군가를 찍었다. 불법촬영한 신체 부위도 유사했다. 모두 여성의 치마 속이나 다리 등을 촬영했다. 여기에 더해 성범죄 전과가 있다는 사실도 똑같았다.
차이는 범행 횟수. 두 사람의 불법촬영 횟수는 2000배 넘게 차이가 났다. 하지만 법은 여기에 대해선 달리 책임을 묻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두 사람이 불법촬영을 한 '행동'에만 책임을 물었다.
"범죄를 많이 저지르면 그에 맞는 처벌을 받는다"는 우리가 믿는 정의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일반의 법 감정과 동떨어진 법원의 결정은 신상 공개에서도 드러난다. 성범죄를 여러 차례 저지른 경우 신상 공개가 되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에선 찾기 힘든 사례였다.
초범이라서, 재범 가능성이 작아서 그런 걸까? 실상은 실형을 포함해 동종 전과가 6범 이상인 경우조차 신상 공개·고지가 이뤄지지 않았다.
불법촬영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할 경우 법원은 원칙적으로 가해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도록 명령해야 한다(아동⋅청소년성보호법 제49조 제1항). 예외적으로 "신상정보를 공개해선 안 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데, 법원 대다수가 이 '예외'를 택하고 있었다. 1259명 중 1225명에게는 공개해서는 안 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법원은 봤다.
불법촬영은 언제든 온라인으로 피해가 확산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다. 한 번 확산된 불법촬영물을 회수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불법촬영을 한 것뿐만 아니라 불법촬영물을 유포 등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처벌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일부 판결들은 가해자가 불법촬영은 했으나, 유포한 정황이 없다는 사실을 감형 사유로 두고 있었다. 심지어 유포했을 때조차 "불특정 다수에게 유포한 건 아니다"라는 이유에서 선처한 판결도 있었다.
법조계 일각에선 불법촬영 범죄, 이른바 '카찰죄' 입법 목적을 고려하면 "유포한 경우 가중 처벌 사유가 될 순 있어도 유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처 사유가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이런 경향은 적지 않았다.
이 문제를 일선 재판에서 적극 해결하고자 나섰던 법관도 있다. "유포하지 않았다는 사정은 감형 사유가 될 수 없다"며 입법 목적과 일반적인 정의 관념에 맞는 판결을 남긴 한 사람, 바로 신진화 부장판사다.
로톡뉴스는 현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장인 신 부장판사에게 해당 양형 사유의 취지와 의미 등에 대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다만 신 부장판사는 정중히 인터뷰를 고사하며 공보 판사를 통해 "기관장의 직책을 맡고 있어 직접 의견을 밝히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동시에 "다른 일선 판사들도 불법촬영 범죄에 대해 좋은 양형 사유를 남겼을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로톡뉴스가 1444건의 불법촬영 판결문을 전수 분석한 결과, 신 부장판사 외엔 해당 문제를 지적하거나 언급한 판결문을 발견할 수 없었다.
재판정에 선 피고인에게 합당한 처벌을 선고할 수 있는 건 오직 법관뿐이다. 입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양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 역시 법관뿐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사정을 고려해 양형할 수 있다. 그러나 범죄와의 인과 관계 자체가 없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들조차 피고인의 유리한 사정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수많은 양형 사유 중 눈에 띄었던 건, 피고인이 치아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난해 2월, 서울북부지법이 맡은 사건이었다.
이러한 양형 이유가 다른 나라 법률과 재판에서도 유리하게 통할 수 있을까? 미국 남부 메릴랜드주에서 변호사와 주정부 검사 등을 역임한 John Park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일반적인 상식에서 의문을 가질만한 주장이지만, 법원은 이를 납득했다.
1259개의 판결문에서 확인한 지난해 불법촬영 실태. 이를 △형량 △신상공개 여부 △가해자 관계 △선처 여부에 따라 분류했다.
그리고 이 방대한 데이터를 확인한 일선 변호사는 뜻밖의 답을 내놨다.
1년간 1259명이 불법촬영으로 처벌됐다는 것에 대해 A변호사는 위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A변호사는 주로 불법촬영 혐의를 받는 가해자에게 법률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
아무리 흉악범이라 하더라도, 헌법에 따라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존재한다. 이 때문에 불법촬영 가해자가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없고, 불법촬영 범죄자를 변호한다고 하여 변호사를 지적할 수도 없다. 다만, 솔직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익명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A변호사는 어째서 이번에 정리된 통계에 대해 "극히 일부"라고 한 걸까.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Q.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 이유가 궁금하다.
A변호사의 말대로, 이번에 정리된 통계는 '판결문'만을 토대로 했다. 대법원은 인터넷에 확정된 형사 판결문을 공개하고 있지만, 약식명령 등에 대해선 별도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 가해자가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 재판이 열리지 않는 한, 해당 자료에 대해 외부에선 열람이 어렵다.
Q. 직접 만나본 가해자들은 반성을 하나?
Q. 몇 년 이상 지속되는 거라면, 불법촬영 범행 횟수도 사건의 실체보다 더 적을 수 있겠다.
이러한 수사 관행이 이어지는 것엔, 법원 역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약 4000번의 불법촬영을 저지른 가해자와 2번의 불법촬영을 저지른 가해자가 똑같이 징역 1년을 선고받은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사기관은 굳이 여죄를 더 찾아내기 보다는 확실한 증거만을 가지고 사건을 마무리하려 하는 경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끝으로 A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