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개 악플 후 게시글 삭제…'캡처본'만으로 처벌 가능할까?
2000개 악플 후 게시글 삭제…'캡처본'만으로 처벌 가능할까?
실수로 증거를 날린 피해자의 절망과 희망, 법률 전문가들이 제시한 '디지털 역공'의 모든 것

2000개가 넘는 악성 댓글의 공격에 시달리다 증거가 담긴 원본 게시글을 실수로 삭제해버린 A씨. 그러나 손에 남은 캡처본 만으로도 싸울 수 있다고 변호사들은 말한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2000개 악성 댓글에 모든 증거를 날렸다고 절망한 A씨, 하지만 법은 '캡처본'만으로도 가해자를 심판할 수 있다고 답했다.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2000개가 넘는 악성 댓글의 공격에 시달리다 증거가 담긴 원본 게시글을 제 손으로 삭제해버린 A씨. 가해자를 향한 분노와 자신의 실수를 향한 자책감에 무너져 내리던 그에게, 법률 전문가들은 한 줄기 빛과 같은 조언을 건넸다. 바로 A씨의 손에 남은 '캡처본'만으로도 충분히 싸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발 멈춰주세요"…끝없이 이어진 2000개의 댓글 지옥
사건은 평범한 인터넷 카페에서 시작됐다. A씨가 올린 글에 한 이용자가 나타나 허위 사실로 가득 찬 조롱 섞인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A씨는 "그만 멈춰달라"고 애원했지만, 가해자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애원은 가해자의 키보드를 더욱 자극하는 불쏘시개가 되었다. 댓글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 2000개를 훌쩍 넘겼다. A씨의 온라인 공간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잠 못 이루던 A씨는 결국 법적 대응을 결심했다. 그는 먼저 포털 사이트에 권리침해 신고를 접수하고, 산더미처럼 쌓인 댓글들을 하나하나 캡처하며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비극이 찾아왔다. 수많은 댓글을 정리하던 중 A씨가 실수로 '게시글 삭제' 버튼을 누르고 만 것이다. 범죄 현장이 통째로 사라진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A씨의 손에는 일부 캡처본과 이제는 텅 빈 페이지로 연결되는 주소(URL)만 덩그러니 남았다.
"실수로 삭제"…절망의 순간, 한 줄기 빛이 된 '캡처본'
"이제 다 끝난 걸까?" A씨는 망연자실했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인 원본 게시글이 사라졌으니 가해자를 처벌할 길도 막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법률사무소에서 그는 예상 밖의 답변을 들었다. 법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아니요, 가능합니다"라고 답했다. 게시글이 삭제되었더라도, A씨가 가진 캡처본이 중요한 증거(증거능력)로 인정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JY법률사무소 이재용 변호사는 "댓글 내용의 스크린샷만으로도 수사기관에 증거자료로 제출해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A씨를 안심시켰다. 법무법인(유한) 한별 김전수 변호사 역시 "수사기관이 포털 사이트에 협조를 요청하면 삭제된 게시글과 댓글 기록이 복구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IP 추적으로 작성자를 특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A씨가 사전에 포털에 권리침해 신고를 해둔 덕분에 서버에 데이터가 보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A씨에게 큰 힘이 되었다.
"내 이름은 없는데"…익명성 뒤에 숨은 가해자, 법망에 세울까
A씨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불안이 있었다. "가해자는 제 실명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처벌이 가능한가요?" 명예훼손이나 모욕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누구인지 제3자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특정성' 요건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기우였다.
법무법인 지금 유헌기 변호사는 "이름이 직접 나오지 않아도 전화번호 등 다른 정보로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면 특정성은 충분히 인정된다"고 명확히 했다. A씨의 경우, 카페 내 다른 회원들이 댓글의 대상이 A씨임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특정성 요건을 넘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불특정 다수가 보는 공개된 카페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공연성' 요건 또한 문제없이 충족될 것으로 보였다.
"삭제 버튼은 끝이 아니다"…디지털 흔적으로 되찾는 정의
변호사들은 A씨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또는 형법상 모욕죄로 가해자를 형사 고소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2000개가 넘는 댓글을 단 행위 자체가 비방의 목적을 명백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형사 처벌과 별개로, A씨가 겪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는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도 함께 진행할 수 있다.
법률사무소 유(唯) 박성현 변호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하게 경찰에 신고하고 포털사에 데이터 보존을 요청하는 초기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사이버 공간의 범죄는 '삭제' 버튼으로 지워지지 않는다. 절망의 끝에서 A씨가 발견했듯, 디지털 세상에 남겨진 희미한 흔적과 법률 전문가의 조력만 있다면, 사라진 게시글 뒤에 숨은 가해자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