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욕설 고소, '이 말' 한마디에 유죄됩니다
디시인사이드 욕설 고소, '이 말' 한마디에 유죄됩니다
IP 특정 후 경찰 조사
변호사들이 경고한 '자백'의 함정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벌어진 사소한 말다툼이 한 남성을 전과자 위기로 몰아넣었다. 상대방의 패륜적인 욕설, 이른바 '패드립'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대응했다가 수사기관의 연락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수사 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무심코 던진 '이 한마디'가 유죄를 확정 짓는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건은 디시인사이드의 한 게시판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해당 게시판에는 이미 신상 정보가 유출되어 있던 고정 닉네임 이용자 A씨가 있었고, 이와 별개로 신원을 알 수 없는 '유동 닉네임' 이용자들이 활동 중이었다. 사건의 당사자인 B씨는 한 유동 닉네임 이용자와 설전을 벌이던 중, 입에 담기 힘든 패드립 공격을 받자 이성을 잃었다.
B씨는 상대방이 이미 신상이 알려진 고정 닉네임 A씨라고 확신했다. 그는 과거 커뮤니티에 공개되었던 A씨의 신상 정보 캡처본을 첨부하며, A씨를 겨냥한 강도 높은 욕설 글 3개와 댓글 2개를 연달아 게시했다. 그러나 얼마 뒤 B씨에게 돌아온 것은 경찰의 연락이었다. 고정 닉네임 A씨가 B씨를 모욕죄로 고소했고, IP 추적을 통해 B씨의 신원이 특정된 것이다.
수사관 앞에서의 '착각' 진술, 스스로 포승줄 묶는 꼴
B씨는 경찰 조사를 앞두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지만, 변호사들은 그가 경찰서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치명적 진술'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바로 "유동 닉네임 이용자가 고정 닉네임 A씨인 줄 알고 욕설을 했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이는 피의자가 스스로 범죄 성립 요건을 완성해 주는 행위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주헌 변호사는 "누군지 알고 욕했다는 식의 추측성 진술은 사건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꾸는 리스크가 된다"고 경고했다. 김동훈 변호사 역시 "상대방을 A씨로 인식하고 욕했다는 취지의 진술이 조서에 한 줄이라도 남게 되면, 이후 이를 번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모욕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알 수 있는 '특정성'과 가해자에게 모욕하려는 마음이 있었는지를 따지는 '고의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B씨가 "A씨인 줄 알았다"고 말하는 순간, 수사기관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B씨의 특정성 인지와 모욕의 고의를 입증하게 된다.
수사관의 유도 심문에 넘어가 섣불리 상대를 동일시하는 인식을 드러내는 순간, 혐의를 벗을 가장 강력한 방어 논리를 스스로 폐기하게 되는 셈이다.
"그가 먼저 시작했다"는 감정 호소보다 법리적 '정황' 제시해야
그렇다면 상대방이 먼저 시작한 패드립과 비하 발언은 아무런 참작 사유가 되지 않는 것일까. 변호사들은 전후 사정이 매우 중요하지만, 대응 방식이 "상대가 먼저 잘못했다"는 식의 단순한 감정적 호소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허은석 변호사는 "단순 변명보다는 해당 게시판의 특성과 당시 언쟁이 발생하게 된 구체적인 흐름을 설명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남기용 변호사 또한 "상대방의 선제적 공격이 담긴 캡처본을 반드시 증거로 제출하며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판례(대법원 2002. 12. 10. 선고 2000도5295 판결 등 참조)에서도 모욕적 표현이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그 표현이 게시판의 맥락이나 상대방의 도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로 인정받을 여지가 있다.
이주헌 변호사는 이러한 정황 증거들이 "모욕의 고의를 부정하거나 정당행위를 주장할 수 있는 핵심 무기"라고 덧붙였다. 즉, 사건 전후의 객관적 상황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기소유예'와 같은 선처를 끌어내거나 무죄를 다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분석이다.
익명성 뒤에 숨은 분노가 현실의 법적 처벌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경찰 조사 단계에서의 전략적인 대처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