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게 턴 도둑 CCTV 공개…'정의 구현'의 덫, 피해자가 피의자 되는 순간
내 가게 턴 도둑 CCTV 공개…'정의 구현'의 덫, 피해자가 피의자 되는 순간
범인 얼굴 공개는 명예훼손·개인정보보호법 위반…'사적 제재' 아닌 '합법적 경고'와 경찰 신고가 해법

절도범의 CCTV 영상을 공개하는 행위는 '정의 구현'처럼 보이지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사적 제재'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정의 구현’인가 ‘사적 제재’인가…CCTV 공개의 두 얼굴
내 가게를 턴 도둑 얼굴을 공개해 '정의 구현'하려던 건물주가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 있다는 법률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왔다. 억울한 마음에 무인점포 절도범의 얼굴이 담긴 CCTV 화면을 가게에 붙이거나 인터넷에 올리는 행위. 속은 후련할지 몰라도 자칫하면 범죄 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CCTV 영상의 무단 게시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 있다며, '사적 제재'가 아닌 수사기관 신고가 원칙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의 구현’인가 ‘사적 제재’인가…CCTV 공개의 두 얼굴
법원의 판단 기준 역시 명확하다. 설령 상대방이 실제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곳에 공개해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렸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태도다.
'도둑'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 우리 법은 진실한 사실을 말했더라도 명예를 훼손하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사실적시 명예훼손).
범죄자에 대한 단죄는 국가의 형사사법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 하며, 개인이 사적으로 집행할 수 없다는 원칙이 깔려 있다. 범인을 잡겠다는 선한 의도가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순간,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모자이크 처리하면 괜찮다? "천만의 말씀"
그렇다면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면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아니오'라고 답한다.
법률사무소 유(唯)의 박성현 변호사는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더라도 옷차림이나 체형, 주변 정보 등으로 특정인을 알아볼 수 있다면 여전히 법적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불완전한 모자이크는 사실상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 역시 타인의 얼굴을 함부로 촬영하거나 공표해선 안 되는 '초상권'을 보호하고 있다. 모자이크 처리를 했더라도 당사자가 식별될 수 있다면 초상권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법률사무소 민앤정의 권민정 변호사는 "특정이 어려운 사진이라면 무혐의가 가능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는 역으로 개인이 특정될 경우 처벌 가능성이 높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도둑 잡아달라"는 공익 목적, 처벌 피할 수 있을까
억울한 건물주 입장에선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한 공익적 목적'이었다고 항변할 수 있다. 우리 형법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명예훼손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형법 제310조)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 '공공의 이익'을 인정받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 법원은 범죄 사실을 알리는 행위의 내용, 표현 방식, 피해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공익성 여부를 판단한다.
단순히 '도둑을 잡고 싶다'는 개인의 목적을 넘어 사회 전체의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수사기관이 아닌 개인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영상을 공개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큰 도박에 가깝다.
속수무책 당할 수만은 없다…'합법적 경고'가 대안
그렇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어야 할까.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증거 제출'과 '합법적 경고'를 병행하라고 조언한다. 절도 정황이 담긴 CCTV 영상 전체를 USB에 담아 경찰에 제출하고, 가게 출입문에는 "절도 발생. 경찰 수사 중 (사건번호: 2024-12345)"과 같이 '사실'만을 적시한 안내문을 붙이는 방식이다.
이는 범인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잠재적 범죄를 예방하고, 다른 고객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CCTV는 '사적 제재'의 도구가 아닌 '증거 확보'의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김경태 법률사무소의 김경태 변호사는 "범죄 피해가 발생한 경우 수사기관에 신고해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직접 영상을 공개하는 것은 또 다른 법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CCTV 설치는 범죄 예방과 시설 관리를 위한 건물주의 정당한 권한이지만, 그 영상 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엄격히 관리되어야 할 개인정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CCTV 영상을 공개하는 순간,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 법률 전문가들의 일관된 조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