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인이 몰카범?…'고소 없는 포렌식'은 없었다
내 연인이 몰카범?…'고소 없는 포렌식'은 없었다
불법촬영 의심 피해자, 영상 삭제 원하지만 사건화는 부담…법조계 "신고는 권리 행사, 망설임은 증거인멸 시간만 벌어줄 뿐"

연인의 불법 촬영 영상이 의심될 경우, 고소 없이 삭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연인의 휴대폰 속 '의심스러운 영상'…고소 없이 삭제? 변호사 20명의 답은 같았다
클럽에서 만나 한 달째 관계를 이어오던 연인. 그의 휴대폰에서 친구들과 나눈 메신저 대화를 우연히 엿본 순간, 여성의 세상은 무너져 내렸다.
자신으로 추정되는 영상이 오간 흔적. 상대는 극구 부인했지만, 불길한 직감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내밀한 사생활이 담긴 영상이 어딘가에 떠돌고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 고소 없이, 조용히 영상만 삭제할 방법은 없을까.
"유포만 막고 조용히 끝내고 싶어요"
불법 촬영 피해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은 복잡하다.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 그리고 영상이 유포됐을지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감이다.
이 여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원한 것은 단 하나, 혹시 존재할지 모를 영상이 더는 유포되지 않도록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었다. 경찰에 신고하고 사건이 공론화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법무법인 반향의 정찬 변호사는 "고소 없이 해결하려면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포렌식을 받아 삭제 여부를 확인해 주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협조를 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어설픈 접근은 오히려 상대에게 증거를 인멸할 시간만 벌어줄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경고다.
"왜 경찰 고소가 유일한 길인가"
20여 명의 변호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경찰 고소'가 유일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개인의 휴대폰은 사적인 영역이기에, 상대방의 동의 없이는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다.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영장'이다.
법률사무소 니케의 이현권 변호사는 "강제로 휴대폰을 확보해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은 오직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영장에만 있다"며 "피해자가 정식으로 고소장을 제출해야만 경찰이 범죄 혐의를 입증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을 수 있다"고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했다.
사설 포렌식 업체 의뢰는 상대방의 '자발적 동의'가 있을 때만 가능해 사실상 무용지물인 셈이다.
"고소 그 후…'디지털 발자국'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고소를 결심했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가해자가 이미 영상을 지웠다고 발뺌해도 소용없다. 현대 수사기법의 총아로 불리는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s)'은 우리가 컴퓨터 휴지통을 비워도 데이터 복구 프로그램을 돌리면 파일이 되살아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삭제된 흔적까지 복원해낸다.
법무법인 심의 심준섭 변호사는 "고소가 접수되면 경찰은 압수수색영장을 통해 휴대폰, PC, 클라우드 서버까지 확보해 포렌식 수사를 진행한다"며 "단순히 삭제된 영상 파일뿐만 아니라, 언제 누구와 공유했는지 등 유포 정황까지 샅샅이 추적할 수 있다"고 고소 이후의 절차를 설명했다.
동의 없는 촬영과 유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중범죄다.
결국 불법 촬영이 의심되는 순간, 메신저 대화 등 정황 증거를 확보해 신고하는 것은 두려운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내 일상을 되찾기 위한 첫걸음이자, 법이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권리 행사다. 한순간의 망설임이 가해자에게 증거 인멸의 시간만 벌어줄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