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근로계약서' 믿고 일했는데, 보이스피싱 자금세탁범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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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근로계약서' 믿고 일했는데, 보이스피싱 자금세탁범이라니

2026. 06. 11 17:12 작성
최회봉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caleb.c@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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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까지 주던 '꿀알바', 6천만 원 범죄의 통로가 된 내 통장

A씨가 유튜브 광고를 보고 시작한 재택 알바로 보이스피싱 자금세탁의 공범으로 몰렸다. / AI 생성 이미지

유튜브 광고를 보고 '모두싸인'으로 정식 근로계약서까지 체결한 재택 아르바이트. 꼬박꼬박 입금되는 월급에 합법적인 일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끝은 6,000만 원대 보이스피싱 자금 세탁의 공범이라는 억울한 누명이었다. 모든 증거를 갖추고도 '미필적 고의'라는 법의 덫에 걸릴 위기다.


변호사들은 단 한 번의 기회, '첫 경찰 조사'에서 운명이 갈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월급도 줬잖아요!" 합법으로 위장한 범죄의 덫


모든 비극의 시작은 2026년 3월, 한 유튜브 부업 광고였다. A씨는 광고를 보고 카카오톡으로 연락해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초기 업무는 가짜 쇼핑몰 회원가입과 상품 주문 대행이었다. 실제로 약속된 일당이 정상적으로 입금되자 A씨는 이 일을 완전히 신뢰하게 됐다. 특히 국내 전자서명 서비스 '모두싸인'을 통해 정식 근로계약서까지 작성하자, 불법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A씨를 범죄에 끌어들이기 위한 사기 조직의 치밀한 밑그림이었다.


얼마 후 담당자가 바뀌고 업무 내용도 달라졌다. "회사 자금 지원을 통한 결제대행 업무"라는 생소한 지시와 함께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매수·매도 방법을 1대1로 교육하기 시작했다.


조직은 '업무 한도 확대'를 핑계로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이미 깊은 신뢰가 쌓인 A씨는 의심 없이 모든 정보를 넘겼고, 그 순간 A씨의 계좌는 6,000만 원 규모의 보이스피싱 자금이 오가는 범죄의 통로로 전락했다.


돈을 코인으로 바꿔 가로챈 조직은 잠적했고, A씨에게 남은 것은 모든 은행 계좌의 지급정지 통보와 경찰 출석 요구서였다.


증거는 완벽한데... '미필적 고의'라는 보이지 않는 벽


A씨는 부업 신청 대화부터 근로계약서, 코인 매수 교육 캡처본까지 결백을 증명할 모든 자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이것만으로 무혐의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건의 핵심은 A씨가 '보이스피싱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조금이라도 예상했는가(미필적 고의)'이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강남의 류재연 변호사는 "사기꾼들이 일당을 지급하고 정교하게 속인 정황을 입증하더라도, 본인 명의 계좌 및 대포통장 격인 정보 전달 행위 자체의 위법성은 남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정상적인 일로 믿었다는 증거가 있어도, 계좌 비밀번호를 넘긴 행위 자체의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신언 법률사무소 박영재 변호사 역시 "수사기관은 조금만 봐도 이상한데 왜 했는지를 따집니다"라며 "자료만 제출하면 자동으로 무혐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경고했다.


결국 수사기관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고액의 자금 이동'과 '계좌 정보 제공'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건이다.


"첫 조사가 운명 가른다"... 변호인들, '일관된 진술' 한목소리


모든 변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첫 경찰 조사'가 사건의 결과를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형사전문 임승빈 변호사는 "초기 카카오톡 대화, 근로계약서, 일당 입금내역, 코인 매수 지시 정황 등 속았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시간 순으로 정리해 조사 단계에서 일관되게 진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조언했다.


같은 증거라도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단순 피해자에서 범죄 공모자로 평가가 갈릴 수 있다는 것이다.


로티피 법률사무소 최광희 변호사는 "경찰 조사에서는 계좌와 개인정보를 제공하게 된 경위, 업무라고 믿은 이유, 수익 구조에 대한 인식 등을 일관되게 설명하고 관련 증거를 모두 제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한강의 이주한 변호사 또한 "특히 첫 진술 내용은 이후 수사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아 사실관계 정리 없이 출석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라며 진술의 중요성을 재차 역설했다.


법무법인 KB 김태안 변호사는 "첫 조사 진술이 매우 중요하므로 조사 동행만 따로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금액이 크고 지급정지·피해자 변제·추가 조사 가능성이 있어 통선임 필요성도 함께 검토하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억울한 피의자가 된 A씨의 운명은, 이제 첫 조사실에서 자신의 상황을 얼마나 논리적이고 일관되게 설명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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