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사망 후 갑자기 생긴 새어머니…자녀가 혼인 무효 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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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사망 후 갑자기 생긴 새어머니…자녀가 혼인 무효 시킬 수 있을까?

2025. 09. 17 14:02 작성
김혜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hj.kim@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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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거 사실이 혼인 무효 가로막아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재산은 관심 없습니다. 아버지의 그 결혼, 없던 일로 할 수 없나요?"


28년간 연락 한번 없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낯선 여자와 혼인신고를 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자녀 A씨는 망연자실했다. 재산 다툼이 아니다. 수십 년 만에 나타나 자신의 가족 관계에 끼어든 '아버지의 새 아내'라는 존재 자체를 법적으로 지워버리고 싶다는 것이다.


A씨에게 아버지는 기억 속에 희미한 존재였다. 28년 넘게 왕래가 끊겼고, A씨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법적으로 이혼하지 못한 채 깊은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마지막 선택으로 낯선 이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엮이게 된 현실 그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혼인신고, 자녀가 없던 일로 할 수 있나?

법적으로 혼인을 무효로 돌리기는 매우 어렵다. 여러 변호사들은 '20년간의 동거'라는 사실이 결정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혼인 무효 소송이 받아들여지려면 '당사자 간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민법 제815조) 등 엄격한 요건을 만족해야 한다.


법무법인 성지파트너스 정진아 변호사는 "아버지께서 그 여자분과 20년 이상 함께 사셨다고 한다면 사실상 혼인 무효가 인정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례는 오랜 기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혼인의사가 있었다고 강력하게 추정한다. 법원은 함께 살았던 시간 그 자체를 두 사람이 부부로 살아가려는 의지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A씨가 소송에서 이기려면, 아버지가 혼인신고 당시 질병 등으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의사무능력' 상태였고, 상대방이 이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신고를 강행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20년 동거라는 사실이 버티고 있는 한, 이는 현실적으로 넘기 힘든 벽이다.


느닷없이 생긴 새어머니, 법적 의무도 따라올까?

A씨의 또 다른 걱정은 갑자기 생긴 새어머니와의 법적 관계다. 만약 새어머니가 사망했을 때 장례를 치르거나 부양을 해야 하는 등 원치 않는 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변호사들은 법적으로는 남남과 다를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수앤인 합동법률사무소 박수진 변호사는 "그 여자분은 아버지의 배우자일 뿐 귀하들과는 법적으로 부모·자식 관계로 볼 수 없다"며 "법적으로 부양의무도 없고, 서로 간 상속권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찝찝한 연결고리, 끊어낼 방법

혼인 무효가 어렵다면, 이 껄끄러운 법적 관계를 끊어낼 방법은 없을까. 변호사들은 '상속포기'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했다.


아버지의 사망으로 A씨는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을 상속인이 됐다. 동시에 아버지의 새 배우자 역시 법적 상속인이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아버지의 재산을 함께 처리해야 하는 '공동상속인' 관계에 놓인다. A씨가 원치 않는 연결고리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법률사무소 엘엔에스 김의지 변호사는 "상속 관계에서 완전히 분리되기를 원한다면 상속포기 신고를 할 수 있다"며 "이는 아버님의 사망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가정법원에 신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속을 포기하면 아버지의 재산은 물론 빚에 대한 책임에서도 벗어나, 새 배우자와 재산 문제로 엮일 일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A씨에게 남은 것은 3개월이라는 시간 안에 결단을 내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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