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금 치른 10분 뒤 강제경매, 신종 전세사기 수법
잔금 치른 10분 뒤 강제경매, 신종 전세사기 수법
“대항력 공백기 노렸다” 변제자대위 주장도 막막

전세 잔금으로 임대인 빚을 갚자마자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전세사기가 발생했다. / AI 생성 이미지
전세 계약 잔금을 치르며 임대인 빚까지 대신 갚아 주자, 10분 만에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
임차인의 대항력이 생기기 전 단 하루의 법적 공백을 파고든 지능형 전세사기다.
피해자는 ‘변제자대위’를 주장하며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는 이미 말소된 권리를 되살리긴 어렵다며, 형사 고소를 통한 압박이 최선의 현실적 해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잔금 후 10분'…완벽한 계약이 악몽으로 변한 순간
모든 비극은 2026년 4월 30일 오전에 일어났다. 임차인 A씨는 계약서 특약에 따라 등기부등본이 깨끗한 것을 확인한 뒤, 오전 10시 20분경 임대인의 근저당 채무를 은행에 직접 상환하며 잔금 절차를 마쳤다.
모든 게 순조롭다고 생각한 순간, 불과 10분 뒤인 10시 30분, 해당 부동산에 강제경매개시결정 등기가 접수됐다.
A씨가 전입신고를 마친 시간은 11시 15분.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집주인이 바뀌어도 계약기간과 보증금을 주장할 권리)과 우선변제권은 전입신고를 마친 ‘다음 날 0시’부터 발생한다.
A씨의 권리가 법적으로 효력을 갖기 전에, 임대인의 다른 채권자가 경매를 신청해 부동산을 압류한 것이다. A씨는 5월 8일이 되어서야 자신의 보증금 전액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내 돈으로 갚은 1순위 권리, 내가 갖겠다" 피해자의 절규
A씨는 임대인이 계약 당시 “개인 채무가 전혀 없다”며 자신을 안심시키고 계약을 종용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법적 구제 수단을 찾던 중 ‘변제자대위’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 A씨는 “내 돈으로 소멸된 선순위 근저당권의 가치를 후순위 채권자가 취득하는 것은 부당하며, 나는 변제자대위 또는 이에 준하는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대신 갚아 준 근저당권의 ‘선순위’ 지위를 법적으로 이어받아, 뒤늦게 경매를 신청한 채권자보다 먼저 보증금을 배당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법의 허점을 파고든 사기꾼에게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없다는 처절한 외침이었다.
'변제자대위'는 희망고문?…“요건은 되지만, 사라진 권리 대위 불가”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A씨의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기 매우 어렵다고 진단했다.
법무법인 평산 정진열 변호사는 “질문자께서 임대인의 근저당채무를 직접 은행에 상환하셨으므로 이해관계 있는 제3자로서 변제자대위의 요건 자체는 충족됩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근저당권이 이미 말소 접수되어 등기부상 소멸한 이상, 대위의 객체인 담보권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물권적 대위 주장을 경매절차에서 관철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대위변제를 주장할 자격은 되지만, 이미 등기부에서 사라진 권리를 되살려 주장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다른 변호사들 역시 동일 판례가 없어 법원의 판단을 예단하기 어렵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법조계의 일치된 해법, "형사고소로 압박하고, 민사로 다퉈라"
전문가들은 변제자대위라는 하나의 법리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형사 고소와 다양한 민사 절차를 병행하는 '투 트랙 전략'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제로 소속 홍윤석 변호사는 “형사고소를 통해 임대인을 강하게 압박해 합의 및 피해 복구를 유도하는 것이 현실적인 손실 최소화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계약 당시 채무 상태를 속인 점, 잔금일 당일의 긴박한 경매 접수 정황 등은 사기죄의 '기망행위'를 입증할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경매 절차에서 배당 순위에 이의를 제기하는 ‘배당이의 소송’이나, A씨의 변제로 부당한 이득을 얻은 경매 신청자에게 이를 반환하라고 청구하는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병행하는 것이 현실적인 피해 회복 방안으로 제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