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채꾼도 죽고, 채무자도 죽었다…주인 잃은 6천만원 누가 갚나
[단독] 사채꾼도 죽고, 채무자도 죽었다…주인 잃은 6천만원 누가 갚나
엉뚱한 피해자만 남긴 사채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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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청주 일대를 무대로 벌어진 끔찍한 사채 살인 사건의 끝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채권자들이 빌려준 돈을 돌려받을 길을 끝내 열어주지 않았다. 채무자의 상속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예상치 못한 법적 난관 때문이다.
사건의 시작은 충주 일대에서 여성들을 상대로 사채업을 하던 한 악덕 사채업자였다. 그는 채무자들을 협박해 성상납을 받는 등 악행을 일삼다 결국 강간 혐의로 고소당했다.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피해 여성이 채무자들을 부추겨 자신을 고소하게 했다고 앙심을 품었다.
비극은 2020년 12월 7일 벌어졌다. 사채업자는 살인 공범과 함께 피해 여성을 차에 감금하고 무차별 폭행한 뒤, 돌로 머리를 내리찍어 살해했다. 이 끔찍한 범행 후 그는 인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날한시에 사망한 것이다.
돈 떼인 채권자들의 마지막 동아줄
한편, 이 비극적인 사건의 불똥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튀었다. 악덕 사채업자와는 별개로, 사망한 여성에게 돈을 빌려줬던 또 다른 채권자들인 A씨와 B씨에게 문제가 닥친 것이다.
A씨는 살해된 여성 채무자에게 총 3,800만 원을, B씨는 계 불입금과 대여금 명목으로 총 2,874만 원을 빌려준 상태였다. 하지만 여성이 사망하고, 그녀의 아들과 모친, 형제자매 등 유족 9명 전원이 법원에 상속포기를 신청하면서 돈을 돌려받을 길이 막막해졌다.
결국 원고들은 마지막 법적 수단을 강구했다. 피해 여성이 살해당했으므로 가해자인 사채업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생긴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사망한 피해자를 대신해 사채업자의 상속인인 아내와 자녀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이다. 피해자의 권리를 빌려 가해자의 유족에게 돈을 갚으라고 요구한 셈이다.
법원 "소송 자격 없다"…예상 못한 '각하' 결정
그러나 청주지방법원 김현룡 판사의 판단은 원고들의 예상과 달랐다. 재판부는 "원고들의 피고들에 대한 소를 모두 각하한다"고 판결했다. 청구를 기각한 것이 아니라, 소송 자체가 요건을 갖추지 못해 부적법하다는 결정이었다.
법원이 이런 판단을 내린 결정적 근거는 '상속인의 존재' 여부였다. 원고들은 피해 여성의 친족 9명이 모두 상속을 포기했지만, 피해 여성 사망 이후에 태어난 4촌의 손자가 상속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 여성의 사망일과 그 아이의 출생일 사이 간격이 294일인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람의 임신기간이 266일(38주)인 것은 공지의 사실"이라며 "피해 여성이 사망할 당시 그 아이는 아직 포태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명시했다.
현행 민법상 상속인이 되려면 피상속인 사망 당시에 최소한 태아 상태여야 하는데, 이 아이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상속인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피해 여성의 모든 유족이 상속을 포기했고, 상속인으로 지목된 아이마저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면서 피해 여성에게는 법적으로 재산을 물려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됐다.
상속인이 없는 사망자를 대신해 소송을 낼 수 없다는 법리에 따라, 채권자들은 돈을 돌려받을 마지막 희망마저 잃게 됐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사망한 비극적인 사건의 법적 책임은, 상속인의 부재라는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혀 공중으로 흩어졌다.
[참고] 청주지방법원 2021가단60185 판결문 (2023. 2. 3.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