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된 구속영장'...가짜검사에 5300만원 뜯겼다
'내 이름으로 된 구속영장'...가짜검사에 5300만원 뜯겼다
현직 교사 노린 '셀프감금' 보이스피싱, 그 실체는?

현직 교사가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5300만 원을 갈취당했다. / AI 생성 이미지
업무 전화인 줄 알고 받았는데, 잠시 후 내 이름이 적힌 구속영장이 화면에 떴다. 현직 교사가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5300만 원을 뜯기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들은 '엠바고'를 운운하며 피해자를 사회와 격리시키고, 중고폰과 텔레그램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셀프감금' 수법을 사용했다. 전문가들은 명백한 피해자라고 진단하면서도, 돈을 이체한 행위 때문에 수사 과정에서 공범으로 몰릴 위험도 있다고 경고했다.
"업무 전화라더니…눈앞에 뜬 구속영장"
평범한 근무일, 교사 A씨는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업무 전화려니 생각했지만, 전화기 너머에서는 A씨 앞으로 등기가 왔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일을 하고 있어 받을 수 없다고 하자, 상대방은 특정 사이트에 접속해 확인하라며 URL을 보냈다. A씨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자, 화면에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구속영장과 대포통장 거래내역이 떠 있었다.
충격에 빠진 A씨에게 범인들은 캡처를 지시하며 곧 '검사'와 연결해 주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들은 "'강상수'라는 인물이 잡혔으며 그 일당이 가진 통장 중 당신 이름으로 된 계좌가 나왔다"며 A씨를 범죄자로 몰아세웠다. 경한 시각장애가 있어 문서를 읽기 어렵다고 호소했지만, 범인들은 "눈으로 읽었으면 읽었다고 이야기하라"며 다그칠 뿐이었다.
"'면직' 협박에 중고폰 개통…24시간 감시의 덫"
범인들은 해당 사건이 '특례' 단계이자 '엠바고(보도유예)'가 걸려있으니 절대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협박했다. 당장 서울중앙지검으로 와서 조사를 받으라는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하자 "구금이거나 강제 연행 등 재판에 서야 한다"는 위협이 돌아왔다.
교사 신분이었던 A씨에게 '면직'과 '누명'이라는 단어는 거대한 공포였다. A씨는 울며불며 빌었고, 범인들은 마지못해 '약식조사'를 허가하는 척하며 더 깊은 통제의 덫을 놓았다. 기존 휴대전화가 도용되었을 것이라며 비 오는 날 택시를 타고 중고폰을 사게 하고, 특정 앱을 깔도록 지시했다.
이후 텔레그램을 통해 식사, 기상, 취침 등 사생활 전부를 보고하게 했고, 심지어 유년기부터 살아온 인생 전체를 글로 써서 읽게 하는 등 엽기적인 통제를 이어갔다. 결국 A씨는 직장에 연가를 냈고, 범인들의 지시에 따라 토스 앱으로 3500만 원, 며칠 뒤 추가로 1800만 원을 대출받아 총 5300만 원을 여러 계좌로 나눠 송금했다.
"명백한 피해자…그러나 '공범' 오해 살 수도"
법률 전문가들은 A씨가 전형적인 '셀프감금형' 보이스피싱의 피해자라고 입을 모았다. 고준용 변호사는 "A씨는 전형적인 수사기관 사칭 보이스피싱, 특히 '셀프감금' 형태의 심리적 강압 피해자입니다"라고 명확히 진단했다.
하지만 돈을 직접 이체한 행위 때문에 수사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고용준 변호사는 "다만 금전 이체 행위가 존재하므로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될 여지는 있어, 초기 진술 정리가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는 "특히 교사·공무원 신분을 인지한 뒤 면직을 반복적으로 언급한 점, 시각장애를 알면서도 ‘읽었다고 말하라’고 강요한 점은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였음을 뒷받침합니다"라고 덧붙여, A씨가 강압에 의해 행동했음을 명확히 했다.
"피해 회복의 열쇠, 형사절차와 별개의 '민사소송'"
피해 금액을 되찾기 위한 현실적인 조언도 이어졌다. 김전수 변호사는 "지금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의 일괄 보존과 계좌 추적의 신속성입니다"라며 통화 녹취, 텔레그램 대화, 송금 기록, 중고폰 구매 영수증 등 모든 증거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수사기관에 제출할 것을 강조했다. 특히 범인 검거와는 별개로 피해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민사 소송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서아람 변호사는 "수사 기관은 범인을 잡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에 A씨의 피해 금액을 회수해 주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따라서 잃어버린 돈을 되찾기 위해서는 형사 절차와는 별개로 계좌 명의자들을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이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같은 민사 소송을 신속하게 제기해야만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