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때문에 이혼은 못 하고 '졸혼' 하려고 하는데⋯합의서에 어떤 내용을 넣을까요?
아이들 때문에 이혼은 못 하고 '졸혼' 하려고 하는데⋯합의서에 어떤 내용을 넣을까요?
부부로서의 의무에서는 벗어나지만, 법적인 부부 관계는 유지하는 졸혼
현행법에 '졸혼' 규정 없지만⋯법원도 인정한 사례도 있어
합의서 작성해도 법적으로 반드시 인정받는 것 아니다, 다만 재판시 유리하다

20년간 부부로 살았지만, 이제 더 이상 참기 힘들어 이혼을 결심한 A씨.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우선 '졸혼'을 하기로 합의했다. /셔터스톡
결혼 20년차 주부인 A씨는 요즘 고민이 깊다. 남편 때문이다. 더 이상은 참기 힘들어 이혼을 결심했고, 남편에게 이를 통보했다.
하지만 남편은 아직 학생인 아이들 때문에 "이혼은 절대 안 된다"고 한다. 이에 A씨와 남편은 '졸혼'(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으로, 이혼하지 않고 법적인 부부 관계는 유지하되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을 하기로 합의했다.
A씨 역시 아이들이 마음에 걸려 내린 결정이다. 자녀가 성인이 되면 그땐 이혼을 하려고 한다. 다만, 몇 년 뒤 일이라 남편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어 이에 관한 합의서나 계약서를 작성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이 법적인 효력이 있을지도 궁금하다.
'졸혼'이라는 말은 2004년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쓴 <졸혼을 권함>이란 책에서 처음 사용됐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한 원로 배우가 "졸혼을 했다"고 밝히며 주목을 받았다.
졸혼은 법적 절차를 거쳐 부부가 갈라서는 이혼과는 다르다. 법적으로 혼인관계는 유지하지만, 부부간의 의무 등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이를 확인한 판결도 앞서 나왔다.
지난해 10월 청주지법 가사1단독 이현경 판사는 "졸혼하라"는 내용의 임의조정 결정을 내렸다. 의처증 남편에게 심한 폭행에 시달려 이혼 소송을 제기했지만, 자녀들 때문에 가정을 지키고 싶어 한 50대 여성을 위한 결정이었다.
이현경 판사는 "이들 부부는 이번 결정에 따라 배우자로서 의무가 없다"며 "법률상 혼인 관계는 유지하되 현재와 같은 별거를 유지한다"고 조정 결과를 밝혔다. 이어 "명절이나 제사 등 가족 행사에 상대방을 동반하지 않으며 부부 관계를 요구하지 않는다"고도 명시했다.
청주지법에서 졸혼 조정 결정이 나왔지만, 아직까지 졸혼은 어떤 법령으로 보호받는 제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A씨 생각처럼 합의서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고 변호사들은 말한다.
'권민경 법률사무소'의 권민경 변호사는 "서로의 생활방식을 명확히 규정하고, 사생활 보호를 약속하고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졸혼은 안정적인 생활비 확보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재산분할과 함께 양육비와 생활비 등을 명확히 한 합의서를 작성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다만 합의서를 작성하더라도 추후 법적 분쟁이 발생한다면, 합의 내용에 대해 다시 한번 다퉈야 할 것이라고 변호사들은 내다봤다.
법무법인 에스알 고순례 변호사는 "부부가 졸혼 합의서를 작성했다면, 나중에 그 합의에 관해 서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야 한다"며 "그렇지 않고 합의를 번복하거나 이행하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고 했다.
고 변호사는 "이런 일이 생겼을 때 합의서대로 효력이 있을지, 아니면 합의서는 단지 참작 사유에 불과하고, 법적인 판단을 다시 받아야 할지가 쟁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합의서는 있는 게 무조건 좋다고 했다. 재판에 갈 경우 유리한 참작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현 법률사무소의 송인욱 변호사는 "졸혼 합의서가 비록 법적으로 인정되고 보호받는 게 아니어도, 추후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때 유리한 자료로 사용될 수는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