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몸으로 경찰 조사를 앞뒀습니다"…벼랑 끝 그녀의 질문에 전문가들이 답하다
"만삭의 몸으로 경찰 조사를 앞뒀습니다"…벼랑 끝 그녀의 질문에 전문가들이 답하다
수사 단계 국선은 '구속'이 전제, 재판에선 '빈곤' 사유로 신청 가능…전문가들이 말하는 법률 지원의 현실

만삭 임산부가 경찰 조사를 앞두고 변호사 선임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통해 법률 사각지대가 드러났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구속돼야 변호사 선임?"…만삭 임산부의 절규가 드러낸 '법률 사각지대'
"만삭의 몸으로 경찰 조사를 앞뒀습니다. 지금 국선 변호인을 부를 방법이 없을까요?"
형사 사건 피의자가 된 한 만삭 임산부 A씨가 법률 플랫폼에 올린 절박한 질문이다. 거동조차 힘든 몸으로 경찰 조사를 앞둔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단연 '변호사' 문제. 체포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의 도움(국선변호인)을 받을 길은 없는지, 막막한 그녀의 물음에 법률 전문가들이 답했다.
수사 단계에선 사실상 '내 편'이 없다. A씨의 질문에 다수 변호사는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현실의 벽은 높다고 잘라 말했다. 현행법상 국선변호인 제도가 주로 재판 단계에 맞춰져 있어, 수사 단계에서 조력을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이다.
검사 출신 안영림 변호사는 "구속영장 심문 등 구속을 앞둔 상황이 아니라면, 수사 단계에서 국선변호인이 선임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설명했다. 불구속 피의자가 경찰·검찰 조사를 받을 때 국가가 선임한 변호인이 동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의미다.
백지은 형사전문 변호사 역시 "설령 수사 단계에서 구속돼 국선변호인이 선정되더라도, 그 변호인은 재판 단계 조력만 할 뿐 수사 조사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형사사건의 첫 단추인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는 사실상 홀로 싸워야 하는 셈이다.
희망은 '재판'에…만삭 임신, 국선 선정의 열쇠
수사 단계의 문턱은 높았지만, 길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재판 단계'에서 반전의 기회가 있다고 조언했다. 만약 검찰이 A씨를 재판에 넘긴다면(기소),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이재용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제33조를 근거로 "피고인이 빈곤 등의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 법원에 국선변호인 선정을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피고인의 청구가 없더라도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직권으로 국선변호인을 붙여줄 수도 있다.
특히 A씨의 '만삭 임신' 상태는 국선변호인 선정을 요청할 중요한 사유가 될 수 있다. 법원이 A씨의 건강 상태와 경제 활동의 제약 등을 고려해 권리 보호를 위해 변호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허동진 변호사는 "법원에 국선변ho인 희망 청구서를 제출하라"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수백만 원' 변호사 비용, 분납·할부도 방법
하지만 재판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당장 코앞에 닥친 경찰 조사가 문제다. 결국 A씨가 기댈 곳은 사선 변호인(개인이 비용을 내고 선임하는 변호사)뿐. 그녀가 가장 걱정했던 '수백만 원의 비용'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의외의 해법들을 제시했다.
안병찬 변호사는 "변호사 착수금은 선불이 원칙"이라면서도 "카드 결제 시 할부가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수백만 원에 달하는 비용이 부담스럽더라도 방법은 있다는 것이다. 심준섭 변호사 역시 "분할납부나 카드결제 등 납부방식은 변호사와 협의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비용 부담이 크더라도 여러 법률사무소와 상담하며 분납 등 현실적인 지급 방식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만삭의 몸으로 홀로 경찰서 문을 두드려야 했던 A씨의 질문은, 우리 형사사법 시스템의 가장 아픈 구멍을 드러낸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낡은 공식은 이제 '유변무죄 무변유죄(변호사가 있으면 무죄, 없으면 유죄)'의 현실로 바뀌었다.
범죄의 유무를 가리는 첫 단추인 수사 단계에서부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한, 사회적 약자의 방어권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수밖에 없다. A씨의 사례는 '모든 국민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2조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증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