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주인 실거주? 이사비 500만원이 먼저
새 집주인 실거주? 이사비 500만원이 먼저
판례 잘못 들이댄 집주인, 세입자의 현명한 반격

집 매매로 퇴거 통보받은 세입자가 계약갱신 요구권을 근거로 이사비 500만 원을 역제안했다. / AI 생성 이미지
“집을 팔았으니 새 주인이 실거주할 겁니다. 나가주세요.”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이 대법원 판례까지 언급하며 퇴거를 통보했다.
하지만 법적 요건을 교묘히 비튼 ‘무효한 통보’였다. 상황을 파악한 세입자는 “이사비 500만 원을 주면 나가겠다”고 역제안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세입자의 법적 권리를 활용한 매우 합리적이고 정당한 요구”라며 만장일치로 세입자의 손을 들어줬다. 전세 시장의 흔한 분쟁, 그 이면의 법리를 파헤친다.
“새 주인 들어온다” 나가라는 집주인, 믿어도 될까?
전세 계약 만료(2026년 7월 14일)를 한참 앞둔 세입자 A씨는 최근 공인중개사로부터 당혹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집주인이 집을 팔았고, 새 매수자가 실거주할 예정이니 계약을 갱신해 줄 수 없다는 통보였다.
공인중개사는 대법원 판례(2021다266631)까지 거론하며 “새 집주인도 실거주 사유로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으니, 집을 비워달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A씨가 판례를 직접 찾아본 결과, 뭔가 이상했다. 판례가 적용되려면 새 주인이 법이 정한 ‘갱신 거절 기간’ 안에 소유권 등기를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A씨의 집은 새 주인이 계약 만료일에 잔금을 치르고 등기할 예정이었다. 법적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판단한 A씨는 “이사비 등 명목으로 500만 원을 받으면 집을 나갈 의향이 있다”고 맞섰다.
하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요구가 정당한지, 집주인과 감정싸움까지 벌인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한 심정이었다.
판례의 '숨은 1인치', 세입자의 무기가 되다
결론부터 말하면, A씨는 법적으로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다. 다수의 변호사들은 집주인과 공인중개사가 판례의 핵심 전제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베테랑 윤영석 변호사는 “새 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하려면 ‘계약 만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의 기간’ 내에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치고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상태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A씨의 계약 만기일은 7월 14일이므로, 갱신 거절 통보가 유효하려면 늦어도 5월 14일까지는 새 주인이 등기를 마쳐야 한다. 하지만 새 주인은 만기일에야 등기를 할 예정이므로, 법적 거절 기한 시점에서는 아직 주인이 아니어서 갱신을 거절할 권한이 없다.
법무법인 우선 이민철 변호사 역시 “기존 집주인 역시 매도가 목적이므로 (실거주) 거절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결국 현 집주인과 새 매수인 모두 A씨의 계약갱신요구권을 거절할 법적 근거가 없는 셈이다.
이사비 500만 원 요구는 과연 정당할까?
그렇다면 A씨의 500만 원 요구는 정당할까? 전문가들은 “매우 합리적인 협상 전략”이라고 입을 모았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변호사는 “임대인 측이 매매 계약을 원만히 마무리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며, 질문자님의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당한 협상 조건”이라고 평가했다.
즉, A씨가 법적으로 보장된 ‘2년 더 살 권리’를 포기해 주는 대가로 이사비와 위로금 성격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타당하다는 분석이다.
법무법인 심 심준섭 변호사도 “전세가 3.3억원 규모에서 이사비, 중개수수료 등을 고려하면 과도한 금액이 아니다”라며 “고객님이 갱신요구권을 고집하면 매매 자체가 무산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임대인 측에서는 협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나가고 소송”은 최악의 수, 왜?
A씨는 “솔직한 심정으로는 집주인하고 이렇게까지 싸웠는데 계약을 갱신하고 싶지는 않다”며, 만약 합의 없이 집을 비워 준 뒤 소송을 걸면 이길 수 있는지도 궁금해했다.
이에 대해 모든 변호사들은 “절대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사를 먼저 나가는 순간, 법적 분쟁에서 급격히 불리해진다.
강대현 변호사는 “자발적 퇴거로 간주되어 합의에 의한 계약 종료로 해석될 여지가 크며, 이 경우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이민철 변호사 역시 “법원에서는 이를 상호 합의에 의한 계약 종료로 보아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할 확률이 높다”며, 불확실한 소송보다는 현재의 유리한 위치를 활용해 퇴거 전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은 단 하나, 반드시 이사 전에 합의 내용을 서면으로 남기고 합의금을 받은 뒤 집을 비워 주라는 것이다.
